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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정치적인 글

- 분노와 우울이 지나가고 ('울분' 과는 조금 다름. '분울' 이랄까...) 그나마 제정신을 차린 상태에서 총선에 대한 기록.

- 사실 출구조사 결과랑 너무 달라서 패닉에 빠진 거지, 애초 선거 직전의 예측에서 엄청나게 벗어나지 않았다. 새누리당 1당, 야권연대 과반, 그리고 진보신당 1석 (소망) 정도였는데, 여기서 새누리당이 10~5석 정도를 더 가져간 거니까... 그나마도 초접전지역에서 안타깝게 뺏긴 의석이 적지 않다는 걸 감안하자면 어제 오늘 민주당이 처먹고 있는 감정적인 욕들은 조금 과하다고 생각된다. 솔직히 문대성 김형태 이인제(!) 이재오 : 등등의 잡것들만 제대로 떨궈 줬어도 무승부란 말 정도는 나왔을 거다. 한끝차로 패배를 절감해야 하는 아쉬움, 이랄까. 게다가 정당득표율로 미뤄볼 때 대선은 할만하다는 결론도 나오니까...

-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민주당 패거리들은 조금만 권력을 쥐어주면 이상할 정도로 '말아드시는' 속성이 있는데 아마 이번 총선에서 대승했다가는 대선은 정말 기대도 못했을 것 같다. 비유컨대 이것들은 그저 덩치 큰 동네 바보 형과 같아서, 인물 전략 이슈 프레임 정책 그리고 타이밍까지 죄다 남들이 만들어다 바치고 제발 제풀에 넘어지지 않기를 빌어야만 하는데, 칼자루를 이번 총선부터 쥐고 있었다가는 필경 10월쯤에 힘이 다 빠졌을 거라는 점. 어쨌든 범야권은 이제 다시 지겨운 논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칼자루를 저 바보가 또 쥐어야 하느냐, 칼자루 하나 만드는게 얼마나 힘든 줄 알기나 하느냐 등등... 그러니 염려되는 것은 이번 패배로 힘이 빠진 칼자루 장인들이 투표율 47.6%를 기록한 '어게인 2008' 상태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일 뿐...

- 그리고 박근혜. 아아 박근혜. 나는 사람이란 말을 아껴야 한다는 걸 요새 박근혜를 보면서 깨닫고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지금 정치판에서 이 사람만큼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없다. 뭐만 했다 하면 전 정권의 원죄에 발목이 잡히는 친노 인사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지난 4년간 극도로 말과 행동을 아낀 덕택에 MB와 선을 긋고 새누리당을 '만드는' 데에도 성공할 수 있었다. 정치인으로서 십수년간 활동하면서 그렇게 아무것도 안했다는 게 얼핏 생각하면 큰 약점이 될 것 같은데, 그게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요컨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그리고 중간만 가면 일등 하는 게 우리나라 정치다. 못믿겠으면 정당디스트로이어 유시민을 보시라. 어떻게 됐는지...

- 여기까진 선거공학적 얘기였고, 지방 거주민이자 새누리당이 싹쓸이한 충북에 사는 사람으로서 (우리 동네는 민주당이 먹었더라만...) 몇마디만 덧붙이자. 내가 느끼기에 이 나라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다름 아닌 '서울공화국' 을 해체하는 것이다. CAT 문제집 한 권 사겠다고 하루 종일 온갖 서점을 쏘다녀야 하는 '충북 중심 도시' 라니 좀 이상하지 않나? 지방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과제 역시 '지역개발' 인데, 문제는 대부분의 진보진영 담론이 여기에서 백만광년쯤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토건경제니 뭐니 해서 삽질하는 걸 까기만 바쁘지. 그래 뭐, 무분별한 개발을 지양하고 환경을 보전하며 토건족을 물리쳐야 한다는 점에는 동감한다. 그럼 도대체 지방에는 뭘 해주겠다는 건데? 비정규직 문제 해결? 농담하냐. 정규직이고 자시고 지방에는 일자리가 애초에 없다. 다 망해가는 자영업 말고는; 요컨대 선거때마다 나오는 정책부재라는 말이 지방 공략에는 결정적인 약점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 어차피 정책이 부재한 건 양당 비슷하다 치자. 그럼 남는 건 인물인데, 문제는 저 새누리당이 가진 인재 풀이 (어지간해서는) 진보진영보다 낫다는 것. 아무래도 엘리트 출신이 더 많은데 그 중에서 썩은 종자만 잘 솎아내면 되는 구조니까. (문대성 김형태 손수조; 이딴 종자로 귀결되는 건 사실 드물고 극단적인 경우다...) 고로 지방에 거주하는 야당 거주자들은 투표를 하면서도 늘 아이러니에 시달리게 된다. 인물은 이 사람이 더 좋은데 왜 하필 새누리당인 것이냐! 오 줄리엣 그대는 어째서 줄리엣인가요?... 이게 지역색이 뚜렷한 호남, 영남은 좀 문제가 다를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닌 충청, 강원에서는 적잖게 문제가 된다는 거다. 이번 총선 패배의 이유 중 절반 이상은 충청 강원의 표심에 있을텐데, 정말 야당은 뚜렷한 정책이 없는 이상 여기선 항상 지게 돼 있다.

- 노무현과 이명박(...)은 여기에 해답을 가지고 있었다. 행정수도 이전과 사대강 사업(...) 그리고 지금 민주당을 비롯한 범 야권은 지방 개발에 대해선 아무런, 정말 개뿔 아무런 복안도 없다. MB심판이라던가, 민주주의 회복과 미래로의 전진 같은 구호를 내세우면 전 대한민국이 감복하고 따라올 것 같지만 솔직히 청주만 와도 그게 어디 먼나라 소리처럼 들리더라는 뜻이다. 수도권 전철을 청주까지 끌고 오겠다는 소리가 차라리 와닿지...

- 그러므로 원론적이지만, 정책을 개발하고 정책으로 선거를 해야 한다. 하지만 언제 민주당이 정책같은 정책을 개발한 적이 있던가... 그건 기대도 안하니까 그냥 끊임없이 정치적 변수를 만들고 판을 뒤집어야 한다. SNS열풍, 나꼼수, 안철수, 오세훈, 무상급식, 뭐 이런 것들. 이 모든 것이 (이번 총선처럼) 상수로 정리되는 순간 게임 끝이다. 박근혜와 그 일당들은 변수에 대처하는 데에는 약하지만 상수에 대처하는 데에는 도사들이다. (오늘 자로 이준석이 김형태 - 문대성 출당을 건의하겠다는 기사가 떴는데, 완전 혀를 내두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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