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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중에

성상파괴운동

- 성상파괴운동(Iconoclasm)이란 단어는 의외로 여러가지 맥락을 의미한다. 일단 역사용어가 아니라 종교용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오늘날 세계적인 성상파괴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IS나 탈레반의 대규모 문화재 파괴가 일어날때 거기다가 Iconoclasm, Iconoclast라는 말을 붙이곤 하더라.


- 하지만 역사용어로는 보통 서기 8~9세기 사이에 비잔티움 제국을 중심으로 성화상의 제작을 금지하고 이미 제작된 성화상을 파괴했던 사태를 가리킨다. 로마 교황에게 비난의 빌미를 제공해서 결국 교황이 프랑크 왕국을 등에 업고 독립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정치적으로도 꽤나 큰 의미를 가진 사건이며... 보통 우리나라에서 성상파괴운동, 성상파괴주의자라고 하면 이 사태와 관련되서 사용되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할 수 있다.


- 이 사태와 관련돼서 많이 쓰이는 시각자료는 대강 이런 것들이다.


    


- 보시다시피 그 당시 (혹은 그 이후로 진행된 운동에 의해) 훼손된 성화상들 되시겠다. 보통 이런 성화상의 샘플은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성당에서 가져오는 편이다. 8~9세기의 기독교 세계라고 하면 역시 비잔티움을 중심으로 한 동지중해 세계가 핵심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중심이 이 곳이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은데... (사실 다른 자료... 중에서 그럴싸한 거... 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의외인 점은 "성상파괴" 라는 단어에서 우리가 반사적으로 떠올리는 동작, 즉 "조각상을 깨트리는 행위" 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문제제기를 처음 들었을때 가만히 생각해보니, 과연, 성 소피아 성당에도 이렇다할 조각상 자체가 없었더랬다. 내가 그냥 단정짓기는 뭣하지만 사실 8~9세기의 이름난 조각작품이란 걸 본 적도 없는 것 같고...


- 그러고보면 그리스-로마 문명에서는 조각, 건축 등등 이른바 "3D 예술"을 빼고 나면 남는 게 하나도 없는데 고작 몇 백년 사이에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전환되다니. 참 미술사라는 건 알다가도 모르겠다.


  


- 이 삽화는 당대에 성상파괴행위를 비난하는 의미에서 그려진 건데,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가 병사들에게 조롱당하며 죽어가는 장면과 함께 그 아래쪽에는 예수님의 모자이크에 회칠을 하는 사람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즉 성상을 파괴하는 행위는 예수를 조롱했던 자들과 다르지 않다는 뜻을 담은 그림. 헌데 이 그림에 표현된 "성상파괴행위" 도 모자이크에 회칠을 하는 모습이다.


 


- 사실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하고 직관적인 "성상파괴행위" 는 이런 게 아닐까 싶은데... 교회를 뜯어내서 조각상을 때려부수고 그림을 불태우고... 특히 왼쪽 그림이 굉장히 여러 책에서 쓰이고 있는 듯. 그런데 그림 속 사람들 복장만 봐도 감이 오겠지만, 의외로 이 사태는 비잔티움 제국의 성상파괴운동과는 거의 상관없는 맥락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이건 16세기 이후 종교개혁과 결부돼서, 특히 칼뱅파를 중심으로 벌어진 성상파괴행위를 묘사한 그림들이다. 최초의 성상파괴운동과는 거의 7, 8백년이나 시차를 두고있는데다가 운동을 실행한 주체도 굉장히 다르다. 




- 요런 식으로 얼굴만 뜯어낸 부조들도 참 기괴하게 느껴지는 편인데... 이것도 전부 16세기에 일어난 일들. 한국에서 성상파괴운동이란 단어는 거의 비잔티움 제국에서 일어난 최초의 상황만을 가리키는데 (심지어 한국어 위키백과에도 비잔티움 제국의 목록만이 작성되어 있음...) 의외로 iconoclasm과 관련된 각종 자료들은 16세기 이후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뭐 더 오래된 시기의 자료가 더 귀한 거야 별로 이상할 것도 없지만... 어쨌거나 주의해야 할 점.




* 뭐 이렇게 일하다가 새롭게 알게되거나 발견하는 것들을 정리하기로 했음.

솔직히 작업물에 쓸 것도 아닌데 나름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 될 때가 종종 있어서.

사실 이런 정리까지 할 생각이 든 걸 보면 역사가 잼난 건 사실인데, 왜 작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