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란 도시 이름을 들었을때 어떤 이야기까지 떠올릴 수 있는가? 보통 사람 상식 수준에서는 브래드 피트가 나오는 영화 트로이와 목마의 전설까지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일 테고, 문학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호메로스나 <일리아드>란 단어까지 떠올릴 수도 있겠다. 여기에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트로이 전쟁의 배경: 그러니까 고대 그리스 문명의 선조 격인 미케네 문명, 그리고 그 미케네 문명이 전성기에 있을때 그와 대립했던 도시로서 트로이를 떠올릴 수도 있겠구...
여기에 정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트로이 문명은 그리스에서 바다 건너, 즉 아나톨리아 반도의 소아시아 계통에 속한 문명으로서 예로부터 그리스인들이 생각했던 "아시아 문명" 에 속한다... 는 것까지 떠올릴 수도 있겠다. 실제로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미케네-트로이의 대립의 연장선상에 아테네-페르시아의 대립이 있다. (사실 그 책이 만들어진 목적 자체가 아시아인과 유럽인의 뿌리를 설명하기 위한 거였다 시작하는 말 부터가 "우리는 언제부터 아시아인과 대립하게 됐는가?" 라니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자면 거의 천년 뒤에 등장하는 로마 제국이 자신들의 선조로 다름아닌 트로이인을 꼽았다는 것까지도 (!)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로마인들한테 원래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는 늑대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레무스 형제 이야기인데 아우구스투스가 시인 베르길리우스에게 명령해서 여기에 트로이 왕족 출신 유민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름하여 <아이네이아스>. 여기에서 생각을 더 해 보자면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뿌리를 그리스가 아니라 그리스와 대립했던 아시아에서 찾았다는 것까지도 추측할 수 있으며... 여기에 로마인들의 문명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 에트루리아인의 원주지가 다름아닌 소아시아로 추측된다는 것까지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이 에트루리아의 영향 때문이라는 거... (솔직히 마지막은 좀 오바에 가깝다고 본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자면 다시 사오백년 뒤!! 유럽에 진입하게 되는 게르만족 중에 결국 오늘날 유럽의 모태가 되는 프랑크족이 무려 트로이에서 자신들의 뿌리를 찾았다는 괴이한 사실마저 (...) 알 수 있게 된다. 애초에 프랑크족이라는 이름이 트로이 전쟁 당시 트로이의 왕이었던 프리아모스의 아들 "프랑키오" 라는 사람한테 나온 거란다. 자기들이 그 사람 후손이라고 주장했다고... 게다가 나중에 노르망디에 정착하게 되는 바이킹의 후손, 노르만족들도 자기들이 트로이 유민 출신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자기가 트로이 유민의 후손이라고 말하는 게 중세 유럽의 게르만 귀족들 사이에서는 무슨 유행 비슷했다고... 난 이게 로마 제국의 영향 아닐까 싶은데 자세한 건 더 찾아봐야 할 거 같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자면 노르만족이 영국을 정복한 이후, 저 유명한 아서 왕의 전설이 발굴되는 내막까지 알아볼 수 있게 된다. 아서 왕의 전설은 로마 제국이 멸망할 당시 영국을 침공한 게르만족, 그러니까 오늘날 영국인의 주류 조상이 되는 앵글로-색슨족과 맞서 싸운 켈트족(구체적으로는 브리튼족)의 영웅들이 그 모델이 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런데 문제는 켈트족의 영웅이었던 아서왕이 왜 오늘날에는 영국의 영웅이 되었냐는 거. 심지어 오늘날 영국은 앵글로-색슨 족의 나라인데? 심지어 잉글랜드라는 말 자체가 앵글로족의 땅이라는 뜻인데?
1066년, 앵글로 색슨 왕조가 지배하던 영국은 노르만족, 즉 노르망디 공 윌리엄 1세의 침략을 받는다. 이후 영국에는 노르만 왕조가 성립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되는데... 앞서 말했듯 노르만족은 자신들의 선조가 트로이에서 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영국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브리튼 왕 연대기>라는 책을 써서 브리튼족의 왕들도 그 선조가 트로이 유민 출신이라고 조작해 버린다. 그러니까 노르만족의 영국 침략은 앵글로 색슨족의 지배로부터 영국을 해방시키는 명분을 갖게 되는 것 (침략명분을 만들기 위해 자기 족보를 조작하는 건 많이 봤어도 남의 족보를 조작하는 건 처음 봤다; 뭐 이런...) 이때 켈트족 영웅이었던 아서왕도 당당한 영국 왕가의 영웅이 되어 환영받게 됨.
근데 이 무렵 잘나가는 왕가는 "트로이 출신 선조 - 그리스도교 영웅" 을 갖는 게 유행이었던 모양이다. 이때 영국 왕가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프랑스는 이미 "트로이 출신 선조 - 그리스도교 영웅 샤를마뉴 대제!!" 를 갖고 있었다. 영국은 이에 맞서 아서 왕을 띄우기 시작. 아서 왕 전설에 이런저런 그리스도교 색채가 묻은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한다.
...까지 생각하다 보면 대체 트로이가 뭐길래 이러는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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