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뭐 김영민 교수 스타일로 글을 써보자는 건 아니고...
내 홈페이지와 방명록을 처음 만들었던 것이 아마도 중학생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충 따져 보면 1999년 정도... 그때만 해도 HTML 문서를 만들어서 (*나모웹에디터 따위로) 직접 기록을 남기는 식이었다. 처음 만든 홈페이지는 창세기전 팬페이지였고... 고등학교 올라오면서 제로보드를 이용해 방명록을 만든 뒤 DB에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고, 대충 싸이월드가 흥하기 전까지는 그 홈페이지에 이런저런 기록을 남겼던 것 같다. 허나 대학 시절 4년 동안은 싸이월드 때문에 한동안 격조했고, 대학 친구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한 2007년 부터는 다시 홈페이지에 이런저런 말을 남기다가, 문득 관리가 귀찮아지고 (군대에 갈 때가 되기도 했고) 해서 티스토리를 팠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기록을 살펴보니 이 블로그를 본격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 2008년 2월부터이다. 뭐 최근엔 일년에 서너번 이상한 글을 남길 뿐이지만서두, 어쨌거나 햇수로 11년동안 남긴 이런저런 글이 축적되어 있는 공간인 셈이다. 가끔 궁금해서 유입 기록을 살펴보면 별 시덥잖은 글 (왕좌의 게임 감상문이라던가 국카스텐 노래 좋다고 감탄하는 글이라던가) 에 검색으로 유입되는 사람이 그래도 종종 있다. 과연 누구일까. 사람이긴 한걸까.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이 시대에 숫자 하나를 사람으로 인식할 때 느껴지는 아득함이 나는 종종 꽤나 낭만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뭔 소리야 이게
각설하고, 나에게 이 공간은 순수한 흑역사 그 자체라고 정의될 수도 있겠다. 다크니이이이스! 세상에 11년 동안 쓴 글을 모조리 모아놓은 공간이라니, 게다가 그 글이란 것들의 상당수가 최소한의 고뇌조차 없이 그냥 대뇌 피질을 흘러흘러 삽시간에 사라질 생각들을 아무런 필터링 없이 옮겨놓은 것들이라니! 게다가 나는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면 행동할 때와는 달리 퍽이나 단정적이고 감정적인 표현을 좋아하는 편이라, 지금 보면 이 곳에는 정말 두 눈 뜨고 볼 수조차 없는 글들이 많다...
허나 재밌는 건 그 모든 글이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지금 이 블로그 뒤쪽을 꼼꼼이 뒤져보면 세상 그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상태로 오픈되어 있다는 점이다. 글쎄, 이게 굳이 올해 들어서 하게 된 생각도 아닌데, 사실 나에게는 그 기록들을 누군가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 더 강한 것 같다. 아니 이게 무슨 변태같은 소리냐... 싶기도 하지만, 나는 꽤 옛날부터 나를 '좀 더 잘 알아줬으면' 하는 사람들에게 이 블로그 주소를 알려주곤 했다. 그리고 어쩌면 이 블로그에 담겨 있는 글들이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거라는 부연을 덧붙이기도 했다. 음, 아무리 곱씹어도 이 설명은 정확하다. 사실 나도 나를 모를 때가 정말 많고, 여기 있는 글들을 참고해서 새로 깨닫는 바가 생길 때도 많으니까.
기록은 위대하다. 나는 이 블로그에 담겨 있는 600여건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걸 느끼곤 한다. 그건 아마도 순간의 모음이 전체보다 크다는 이상한 사실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제로보드의 기록 5천여 건을 떠올릴 때면 조금 가슴이 아프다)
허나 요즘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솔직히 이 공간을 오픈할 마음이나 용기가 잘 생기질 않는다. 내가 이 블로그를 만들던 시절, 과거의 SNS는... 주로 세상에 내놓기 어려운 감정의 B컷을 모아 놓는 공간 같은 곳이었다. 그러니까 누군가 알아도 모른 척 하고 지나가는 정보들. 그래도 괜찮은 정보들 말이다. 그러니까 싸이월드 같은 곳에 막 감성글 눈물글 남기던 사람들이 평소에도 그러고 다녔을 것 같나? 그거 아니라는 거다. 다 멀쩡한 사람들이 그런 짓을 했다는 거다. (...아주 없다고는 못하겠다...) 요즘 이런 역할은 '카카오톡 상태메시지' 정도에만 약하게 남아있지 않나 싶은데.
누군가는 그런 B컷을 왜 세상에 전시하느냐고, 진정 변태취향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으나, 우연히 서로가 감추고 있는 모습을 약간 알았을 때 그래도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는... 일종의 착각같은 거라도 공유하는 게 목적 아니었나 싶다. 으음 뭐랄까 요즘 문법하고는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이 곳을 공개하기가 몹시 꺼려지는 거다. 모두가 지 맘대로 떠드는 트위터나 진중한 의견 발표의 장이 된 페이스북, 인증샷의 화수분인 인스타그램하고는 완전히 문법이 다른 곳이니까... 그래서 요즘은 각잡고 진지하고 완성된 글만 쓰는 블로그를 좀 만들어 볼까 고민중인데, 글쎄 언제쯤 가능할런지.
야근 끝내고 조금 남는 시간에 두들김.
'살다보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상은 얼마나 연약한가 (0) | 2020.06.14 |
---|---|
나이듦에 관하여 (0) | 2020.02.17 |
이런저런 (0) | 2019.03.27 |
명절의 넷플릭스 (0) | 2019.02.07 |
즐거운 생각을 하자 (0) | 2019.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