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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명절의 넷플릭스

- 생각이 많을 때 맞이한 연휴라, 정리를 시도하고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에 괜찮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정리되고 결정을 내린 게 하나도 없는 걸 보니 결국 그냥 핑계였던 게 아닌가 싶고... 장장 5일 동안 주구장창 했던 게 넷플릭스 시청 뿐이라 관련 이야기나 몇 가지.

<러시아 인형처럼>

따끈따끈한 2월 신작 드라마. 누군가의 추천 없이 챙겨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는 처음인 것 같은데, 에피소드당 길이가 30분 내외이고 전체 에피소드가 8개에 불과하다는 게 가장 큰 선택 이유였다. 현대인은 시간이 없으니까... 진짜 두시간 반 짜리 영화를 어떻게 참고 보는지 몰라... 아 물론, 그것보다는 배우와 캐릭터의 매력이 더 중요하긴 했다. 주연을 맡으신 나타샤 리온은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을 본 사람들에게는 이미 유명한 모양인데 캐릭터랑 배우가 어쩜 그렇게 찰떡궁합인지, 시쳇말로 정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에 비해 이야기가 딱히 매력적이었는가 하면 그건 글쎄올시다. 시놉시스만 읽어도 나오지만 이 드라마는 전형적인 '루프물'이다. 반복되는 하루 속에 갇힌 사람이 거기서 벗어나려 애쓰다가 뭐 삶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블라블라. 사실 이 분야의 초고전인 <사랑의 블랙홀>에서 거의 반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이야기라서 그닥 신선함은 없었다. 물론 중반부 이후로 루프물의 공식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약간 느껴지기는 한다. 그런데 뭐... 지금 로튼토마토 지수가 100%에 육박하는데다가 트윗터와 블로그 등 경향각지에서 극찬이 쏟아지는데 개인적으로 뭐 이렇게까지 칭찬을 받을 작품이라고는 도저히 믿겨지질 않아서... 개인적으로는 이야기나 플롯보다는 "잘 짜여진 캐릭터" 의 힘을 다시 한 번 느꼈다고나 할까?

<나르코스>

이걸 이제야? 봤나 싶은데 이런 것까지 챙겨보게 하는 게 넷플릭스의 힘인 듯. 사실 이것도 시즌당 에피소드가 10개 뿐이길래 몰아볼 용기를 냈다...개인적으로 밀수, 마약상, 범죄조직의 알력다툼과 음모, 스파이, 첩보, 이런 이야기 너무 복잡해서 싫어하는 편이다. 내가 음모를 이해하는 머리가 없어서 그런지 설명이 조금만 복잡해도 이해를 잘 못하는 편이라... (미션임파서블도 항상 볼 때마다 한 번에 이해를 못한다...) 그런데 나르코스는 내 선입견과 달리 이야기 구조가 엄청나게 단순하고 전달력도 강했다. 이 정도 복잡한 이야기를 이 정도로 단순화한 게 정말 능력이다 싶었는데. 더구나 이게 실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라고 하니 당연히 빠져들 수밖에...

사실 거대 마약상에 공산당, 미국만 있어도 이야기가 저렇게 복잡해지는데 저기에 이슬람 원리주의자, 극렬 민족주의자까지 끼어들면 (여기어 수니파 vs 시아파까지 있으면 그것도 괜찮겠다) 정말 어떤 헬게이트가 펼쳐질지 상당히 흥미로웠다. 중동 배경으로 스토리 하나 나올만 하지 않을까.

 <킹덤>

순전히 광고 물량공세때문에 궁금해서 봤다. 사실 설 전에 다 봤는데 형네 가족이 다시 보느라고 덩달아 두 번 봤음. 두 번째 보면서 새삼 느꼈는데 인간들은 전부 연기를 못하고 좀비들은 전부 극강이다. 정말 이 드라마 좀비들은 세계 좀비사에 기념비적으로 남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신과 함께- 인과 연>

이건 뭐 넷플릭스랑은 관계 없는 것도 같지만 어쨌든 넷플릭스에 있으니까... 나름 천만영화이니 만큼 온가족이 볼 영화로 선택한 건데 한 시간 넘어가는 순간부터 진짜 고문당하는 심정이었다. 다 세어본 건 아니지만 대충 다섯 가지 정도 플롯이 저마다 전개되는 것 같은데? 하나같이 뒷얘기가 전혀 궁금하지 않은데다가 그나마 남 이야기 맥락을 죄다 끊어놓으며 등장하는 통에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음. CG는... 사실 랩터나 티라노 등장은 너그럽게 봐준다 치는데 얍얍 발차기하는 정도는 그냥 찍어도 되지 않았나! 포트폴리오가 그렇게 궁했더냐... 여하간 영화 전체를 통틀어 맥락이라고는 1도 찾을 수가 없었던 돈지랄 블록버스터. 근데 이게 천이백만이나 들었네. 헐.


여하튼 넷플릭스 이거 빠지면 빠질수록 요물이다. 볼 게 무궁무진해... 한동안은 나르코스를 계속 볼 거 같고 그 뒤에는 <루머의 루머의 루머>가 대기 중이다. <빨간머리 앤>도 찜해놓고는 있는데 이건 또 은근 길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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