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는 Babel 입니다. 이 이야기의 개요는 가까운 사람들한테는 많이 이야기했던 듯.
- 어쨌든 이걸로 [내일 한다면 하는 사나이] 정도는 획득
- 어째 점점 안드로메다로 향하는 글의 퀄리티... 는 어쩔...
- 글 속에 족히 수십 번은 반복되는 작자의 독백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내가 마지막으로 쓴 소설을,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보여주었을 때, 마지막으로 돌아왔던 반응을 나는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오늘 아침의 일이었다. 이대 앞 커피빈에서 만난 출판사 편집장은, 원고의 마지막 페이지를 휙 넘기더니, 페이지가 더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원고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오른손으로 아직 남은 아이스 카페모카를 집으며, 조금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더랬다.
- 화성에서는 모기가 개구리를 강간한다죠?
그것은 결단코, 내가 들어왔던 그 어떤 반응보다도 획기적이며 참신한 반응이었지만, 불행히도 나는 그 말을 해석할만한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편집장의 얼굴을 멀뚱멀뚱히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 무슨 말씀이신지…
- 오존층의 85퍼센트가 불타버리면 새우등이 고래밥이 될지도 모른대요. 국제관계가 고양이 똥처럼 말라가고 있는데, 연기씨, 청약저축은 넣고 있어요? 환율은 국제유가랑 열애하고 있구요?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 네?
편집장은 답답하다는 듯 이맛살을 찌푸리더니 원고를 손바닥으로 쳐 가며 격하게 말했다.
- 그러니까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거에요!
- …네?
- 이런 엘니뇨같은 친구를 봤나. 할머니가 폐암으로 돌아가실 때 연기씨 고향의 진달래는 눈물을 머금고 있었어요? 시금치는 열무김치랑 당파싸움을 시작할 마음가짐이 되어 있었고? 닭죽에 간장을 넣으면 미음에 전복죽을 끓인 것 만큼이나 신호등은 빨간불이란 거, 귀신이 대통령이랑 붙어먹을 때 형님은 시냇물에 두꺼비 혓바늘 같은 냉커피나 타고 있었겠죠. 오해해요. 운전면허는 하루아침에 따기 어려우니까요.
확실히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었지만 아직 정확히 뭐가 잘못된 건지는 알지 못했다. 미증유의 재난은 언제나 그런 식인 것이다. 나는 편집장의 말을 곰곰이 되새기며 내 소설 어딘가에 그가 저런 말을 내뱉어가며 논평할 내용이 있는지 다시 짚어보고 있었다. 거의 동시에 옆 테이블에서 비슷한 소동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어쩌면 지금까지도 똑같은 고민에 빠져있었을 것이다.
바벨탑에서 처음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에도, 아마도 신의 노여움을 건드릴 마지막 벽돌을 쌓아올린 그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가 얼마나 당황했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내 소설을 편집장이 다 읽은 순간, 바벨 이후 수천 년 간 사람들이 쌓아올린 그 무언가가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 나는 마지막 벽돌을 눈앞에 둔 채 편집장과 주변 사람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
편집장은 주변을 돌아보더니, 심각한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 연기씨? 뜨거운 마지막 밤은 나와 함께?
- …혹시 지금 제가 하는 말은 이해가 가세요?
편집장은 입을 딱 벌렸다. 말은 이해할 수 없어도 지금 저 표정은 확실히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 때문이다. ‘아니 어떻게 그런 말을?’ 나는 이를 꽉 깨물고, 천천히 말했다.
- 저도 마찬가지에요. 지금 뭔가가 이상해진 거 같아요. 귀에 들리는 거 말고, 제 입모양을 잘 보세요. 아아, 하나, 둘, 셋. 말. 이. 안. 통. 해. 요. 맞. 죠?
나는 입을 가리키며 두세 번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처음엔 뭔가에 얻어맞은 표정이던 편집장도 곧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 혹. 시. 개. 키. 워. 본. 적. 있. 어. 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글쎄요. 저라고 그걸… 맙소사,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단 안전한 곳으로 가세요. 그게 좋겠어요. 집에 도착하거든 연락드릴게요. 전 사무실 사람들하고 연락해 보구요. 네. 일단은 내일 다시 만나는 걸로 하죠. 내일이면 괜찮아 질까요? 모를 일이죠. 하지만 소설은 써야 하니까. 그래요… 일단 원고는 가져갈게요. 평은 천천히 하는 걸로 해 두죠. 네. 조심하세요. 아 참, 연기씨. 네?
- 재밌게 읽었어요.
나는 아직도 우연이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편집장은 유달리, 그 한마디만을 또렷하게 남겨둔 채 내 마지막 소설을 들고 허겁지겁 자기 차로 달려갔다. 계산을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종업원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손님들이 하나 둘 씩 몸을 피하고, 카운터 앞에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선 종업원은 나마저 바깥으로 나가려 하자 허겁지겁 달려오며 소리 질렀다.
- 내가 니 애비다!
나는 피식 웃으며 카드를 내밀었다. 웃을 일은 아니었는데도.
내가 처음으로 쓴 소설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보여주었을 때, 처음으로 돌아왔던 반응을 나는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꼭 10년 전이었다. 내 처녀작의 첫 독자는 원고의 마지막 페이지를 휙 넘기더니, 페이지가 더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원고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오른손으로 아직 남은 음료수를 집으며, 조금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더랬다.
- 재밌네.
그때만 해도 이 짤막한 한마디의 변용을 그렇게나 많이 듣게 될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마도 한적한 롯데리아에서 불고기버거를 시켜놓고 사이다를 빨며 별로 친하지도 않은 친구가 쓴 소설을 읽은 경험은 처음이었을 것이 분명한 그녀는, 그러니까, ‘그녀’ 는, 이름이 성연지였고, 당시 16살이었으며, 내가 다니던 남자 중학교에서 언덕을 올라 십 분 거리에 있는 여중에 다니고 있었고, 나랑은 꼭 네 번째 만나는 참이었다. 네 번째라고 했다. 우리는 비록 같은 재단에 속한 학교를 다니고는 있었지만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도 아니었고, 같은 학원에 다니지도 않았으며, 같은 동네에 살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부연하자면, 내 처녀작이 첫 독자에게 발표된 자리란, 운명의 여신이 신경 써서 점지해주지 않는 한 계절이 바뀌고 해가 갈 때까지 일상에서 스칠 일 조차 없는 두 소년소녀가 고작 네 번째로 만나는 자리였다는 뜻이다. 자기표현에 서툰 문학 소년의 처녀작이란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 줘도 이런 자리에 어울릴 수가 없었다. 장마가 끝날 무렵이었다. 우리는 더위와 습기에 지친 화초처럼 축 늘어졌다.
소설에 대한 이야기는 아마 10분 후에는 사라졌던 걸로 기억한다. 고로 나는 거의 입을 다물고 있었다. 선생님과 학원과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이러쿵저러쿵 늘어놓는 연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냥 되는대로 맞장구를 치면서도, 나는 화장실을 찾지 못한 고양이처럼 마음속으로 끙끙대기만 했다. 기어코 다음에 또 보자고 손을 흔들며 헤어질 때에야, 나는 내가 몇 달 동안 고심하고 고민하며 썼다가 지우고 다시 고치기를 반복한 나의 처녀작이 그 한마디 - 재밌네 - 로 요약되어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결코 그 반응이 실망스럽다거나, 성실하지 못하다거나, 문화인임을 포기한 망언이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다. 한 편의 소설을 보여주었을 때 독자에게 기대할 수 있는 반응을 1에서 5정도로 나열해 본다면, ‘재밌네’ 는 적어도 4정도는 가는 반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연지가 택할 수 있는 말은 굉장히 많았다. 언뜻 생각해도 ‘재미없어’ ‘시간 낭비 했네’ ‘너 제정신이니?’ ‘이게 무슨 소리야?’ ‘이해가 안 간다’ 기타등등, 얼마든지 과격한 언어가 많은데, 연지는 굳이 ‘재밌네’를 택했다. 재미있다니! 이 한마디가 응축하고 있는 우주적인 의미를 이 자리에 다 풀어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소년의 처녀작에 해석 불가능한 언어를 선사해 준 것 만으로, 나는 연지에게 아직까지 충분히 감사하고 있다. 어쩌면 그 한마디의 아득함을 어떻게든 해석해 보고 싶어서,
나는 그 이후로 3년간 소설을 쓸 때마다 연지에게 제일 처음으로 보여주곤 했다.
연지를 처음으로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15살, 중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는 해의 겨울이었다. 우리 학교가 속한 재단은 여고 하나, 남고 하나, 여상 하나, 남중 하나, 여중 하나, 그리고 대학 하나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해 겨울 처음으로 여섯 학교가 동시에 참여하는 축제가 기획되고 있었다. 우리는 여섯 학교 축제 기획단 첫 모임에서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했다. 나는 우리 학교 문예부 대표였고, 연지는 자기 학교 밴드부 대표였다. 내가 시전에 쓸 액자 견본을 끙끙대며 들고 올라온 회의실에, 연지는 거의 자기 몸 만한 앰프를 끙끙대며 들고 올라왔다. 사범대 강의실 하나를 빌려 마련한 회의실은 여섯 학교의 수십 명이 모이기엔 너무 좁았고, 우리는 중요한 안건들만 서둘러 논의하고는 회의를 끝마쳤다. 우리는 서로를 액자와 앰프로 기억했으며… 어쩌면 아직까지도 꼭 그만큼의 거리에 있다.
이어진 두 번의 회의에서, 일정상 밴드 공연이 시 낭송회 바로 다음에 자리 잡으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로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특히 연지는 내가 시를 낭송할 동안 뒤에서 악기를 세팅하겠다는 엽기적인 제안을 했는데, 백 번 양보해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제안이었다. 사춘기 소년의 숭고한 감성을 기타와 베이스 잡음 따위로 짓뭉개 버리겠다는 사악한 소녀와, 고작 오 분 뒤면 신나게 뛰놀아야 할 소녀의 관객들을 아득한 문학의 세계로 인도하겠다는 고지식한 소년의 충돌이었다. 생각해 보자면 공연 스케줄을 그따위로 잡아버린 선생님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었지만 - 그 나이 때는 누구에게나 그렇듯, 우리에게도 세상은 고작 그 정도로 열려 있었다.
오후 여섯 시, 대학 강당, 눈이 많이 내렸다. 오리털 파카에 목도리를 두른 사람들이 강당 안으로 쫓기듯 들어왔다. 나는 강당 한편에 마련된 대기실에 연지네 밴드 아이들을 비롯한 다른 공연 팀들과 함께 있었다. 아마추어 학생들의 학예회라는 것이 보통 그렇듯, 레퍼토리는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가지 않았다. 댄스배틀, 노래자랑, 마술쇼, 연극, 밴드합주… 그리고 시 낭송. 나는 어머니가 심혈을 기울여 기획한 ‘문학소년 룩’을 입은 채 대기실 구석에 멍하니 쭈그리고 있었는데, 유독 나만 혼자였고, 나만 연습할 게 없었다. 여기저기서 온갖 기계음과 목 푸는 괴성이, 허리 어깨 목을 이리저리 흔들며 자기네 팀과 몸놀림을 맞추고, 못다 외운 대사에 감정을 싣느라 고심하는 목소리가 한참인 판국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니, 몸에 쫙 붙는 와이셔츠며 자켓이 그 때 만큼 불편했던 적이 없다. 난 도대체 뭘 해야 하나, 고민해 보았고, 선생님께서는 시에 감정을 실어 전달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강약 및 높낮이 조절이 꼭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더랬다. 그래서 난, A4용지에 인쇄해 온 내 시를 이렇게, 저렇게 읽어보며 골똘히 적절한 강약과 높낮이를 찾기로 했다.
그리고 5분쯤 뒤에 혼자 중얼거렸다.
망할.
- 잘 돼가니?
연지가 물어봤을 때, 나는 그 아이가 뭘 물어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고 있는 건 없고 하는 척 하고 있는 것만 있으니 잘 돼가는 게 있을 리도 없다. 나는 억지로 웃어 보이며 아무 말로나 대답했다.
- 뭐, 그냥, 그럭저럭.
- 그래? 다행이네. 우린 처음 틀렸던 거 아직도 틀리고 있어. 내가 아주 미치겠다니까.
- 괜찮아. 잘 할 거야.
- 그래, 뭐, 지금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사실 할 때 한 번만 잘 하면 그만이니까. 그렇지? 야, 너 분위기 망치면 진짜 죽는다. 우리가 마지막이라서 완전 책임져야 된단 말야. 잘 해!
지금쯤 연지는 알고 있을까. 그 대기실에서 내가 더 잘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는 걸 말이다. 사실 우리는 같은 불평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 할 때 한 번만 잘하면 그만인데, 자꾸만 틀렸던 걸 계속 틀리고 있어. 내가 아주 미치겠다니까 - 그렇게 자꾸 틀리고, 그렇게 미치다가, 한 번만 잘하면 그만인 기회를 수도 없이 놓쳐버린 끝에,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보통은, 누구에게나 그런 것 같기도… 하다.
- 다음으로 윤연기군의 시 낭송이 있겠습니다.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사회자의 호명이 이어지고, 1000개의 손이 내뿜는 박수소리에 떠밀려, 1000개의 눈초리 앞에 섰던 시간. 오후 7시 12분, 초침이 일 분의 시작점에 걸치는 순간, 세상은 거짓말처럼 절대적인 적막으로 가득 찼다. 핀 조명이 눈앞에 떨어졌다. 1000개의 눈 대신 하나의 거대한 빛 덩이만이 눈앞에 남았다. 시간이 유난히 천천히 흘러갔다. 곁눈질로 보이는 강당 창문 밖에는 눈송이들이 낙엽의 속도로 낙하하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반갑습니다. 2학년 문예부 윤. 연. 기. 라고 합니다.
빛덩이도, 빛덩이 아래에 있을 500명의 사람들도, 그 사람들의 의지 하에 있을 1000개의 손들도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았다. 나는 입술에 침을 묻혔다.
- 시작하겠습니다.
누군가 기침소리를 냈다. 그리고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낭송을 마친 뒤 허겁지겁 뒤돌아서 대기실로 향했던 것 같다. 기타를 들고 무대로 올라오던 연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짧고 신나게 말했다.
- 수고했어!
그 날 밤, 나는 그 한마디의 변용을 수도 없이 많이 들었다. 수고했어, 수고했다. 수고 많았어. 수고하셨어요! 고생했다. 많이 떨렸지? 긴장한 거 같던데. 잘 들었다. 시 좋던데? 그리고 그 모든 말들로 뱃속을 채워 넣기 이전에, 대기실에 앉아 멀리서 들려오는 연지의 노랫소리와 사람들의 환호를 들었던 걸 퍽이나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 적막한 대기실에서, 나는 진정으로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순간이란 저 환호성과 같은 것이 아닐까 막연히 짐작했다. 그러니까 틀린 곳을 자꾸 다시 틀리지 않고, 제대로 따라준 기회를 잘 살리기만 한다면, 내가 시를 읽을 때에도 저런 환호성 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한 연이 끝날 때마다 오호오오~ 미친 듯 괴성을 지르게 만드는, 그런 글. 그런 건 없을까?
연지의 생각은 이랬다.
- 잘만 쓰면?
-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 에에. 난 그런 건 잘 몰라. 근데 뭐… 야, 일단 노래는 따라하라거나, 일어나라거나, 춤추라거나, 소리 지르라거나, 그런 게 많잖아. 근데 니가 쓰는 글에는 그런 게 없어.
- 그럼 그렇게 쓰면 되는 거야? 자 지금부터 따라 해 봐/원투쓰리포파이브식스세븐에잇/모두 일어나 춤을 추며/소리 질러 신나게 이 순간을…
- …그건 쫌 아닌 듯.
그래, 그건 쫌 아니다. 그 날 이후로 나에게 글이란 건 늘, 그건 쫌 아닌 것이었다.
연지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지 몇 년이나 지난 나의 ‘첫 독자’ 가 왜 하필이면 그 때 떠오른 건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는 핸드폰을 검색해 무작정 그녀의 번호가 남아있길 기도했다. 없었다. 아마도 군 제대 후 오래도록 연락하지 않은 사람들은 죄다 지워버렸을 것이다. 뭔가 다른 방법은 없을까? 나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되도록 입은 열지 않기로 했다. 많은 이들이 입을 잘못 놀린 탓에, 길거리는 온통 패닉상태에 빠진 사람들로 가득했다.
지하철을 타고 집까지 들어오는 길목 내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말을 걸어왔다. 나는 입을 악 다문 채 고개를 저으며 도인을 상대 하는 태도로 그들을 내쳤다. 지하철 안내는 내릴 문과 정지할 역을 읽어주는 대신 여름 휴양지 목록을 읊고 있었다. 그래도, 집에 도착할 무렵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안정을 되찾고 각자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적어도 문자는 문제없이 소통되는 듯 했으며, 서로의 입모양에 관심을 집중한다면 상대방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정도는 문제없이 읽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휴대폰 문자메시지로는 ‘신경성 바이러스 살포’ 경고가 날아들었다. 두뇌의 언어체계를 교란하는 최첨단 화학무기로, 국정원 추정에 따르면 배후에는… 에서 문자 내용은 끊겨 있었다. 바벨의 기적을 인간이 추적할 수 없다는 건, 어쩐지 다행인 것 같았다. ‘국정원에 따르면 이번 생화학 테러의 배후에는 야훼(연령미상) 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행동대장으로 예수(연령미상)가 지목되었다. 이들은 4000여년 전부터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조직적인 테러 위협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왔으며…’ 라는 걸 알아봐야 내가 뭘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집에 도착한 나는 오래된 서랍 속을 뒤져 고등학교 시절 문예부에서 발간했던 문집을 꺼냈다. 대부분의 문집은 시전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되도록 남지 않도록 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나에게는 단 한권, 직접 서명까지 하고 따로 약속을 잡아 만나서 건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 문집이 있었다. 나는 손에 든 얇은 책자를 빠르게 넘겨 마지막 장을 확인했다. 기억은 정확했다. ‘성연지. 011-XXX-XXXX. 연락해.’
연지가 이걸 돌려주면서 한 말이 있었다.
- 연기야. 이제 그만 하자.
나는 놀란 나머지,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 뭘?
- 너 이거, 왜 줬는지 알 것 같아. 아니, 알아. 3년 전부터 한 달에 한 편씩 보여줬던 것들도 대충은 알 거 같아. 연기야, 그러니까…
연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 이건 쫌 아니야.
나는 물어보지 못했다. 연지가 뭘 알아낸 건지, 그게 내가 생각한 것과 같기는 한지, 혹시 턱도 없는 오해를 한 건 아닌지, 뭘 그만하자는 건지… 다만 별로 물어 볼 필요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3년간 갈겨댄 36편의 이야기 속에 무수히 담긴 나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집어내서, 기어코 하나로 조립해 낸 연지는, 결국 자명해진 하나의 메시지를 부여잡았지만 그 대답을 내 눈앞에서, 그만큼이나 자명한 언어로 표현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늘 그렇듯 ‘그건 쫌 아닌 것’ 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을 수도 있었지만, 그런 것들을 모두 확인하기에 36개나 되는 이야기의 무게는 너무 무거웠다.
하지만 나는 알고 싶었다.
- 연지야. 화왕계花王戒 알지?
- 몰라.
- 설총이 신문왕한테 했던 이야기 말야. 삼국유사에 나오는 거. 신문왕이 어느 날 설총한테, 재미있는 얘기가 있으면 하나 해 보라고 하니까, 설총이 이 이야기를 들려줘. 꽃나라를 다스리는 화왕花王한테 장미하고 할미꽃이 찾아오는데, 장미는 아첨쟁이고 할미꽃은 지조 있는, 뭐 그런 꽃이었단 말야. 화왕이 처음에는 장미한테 끌리다가, 결국엔 할미꽃을 선택한다는, 뻔한 이야기지. 그런데 신문왕은 이 얘기를 듣고 크게 감명 받아서, 이 이야기를 글로 써서 널리 전하게 하고, 설총은 높은 관직에 임명했대.
- …근데 그게 뭐 어쨌다고?
- 난 그게 궁금해. 신문왕은 정말 설총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고 있었을까? 결국엔 그런 거잖아. ‘아 재밌다. 까먹기 전에 글로 써갖구 다른 애들한테도 좀 들려줘라. 수고했으니까 관직도 하나쯤 줄게. 그러니까 다음에 또 재밌는 얘기 준비해, 알았지?’ 이게 뭐야? 설총이 왜 그런 말을 한 건지, 알아들었단 소리는 하나도 없어. 사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몰랐을 수도 있잖아. 그냥 뭔가 대단한 거 같으니까, 음, 그래, 참 잘했어요. 박수 짝짝짝. 해 준 걸 수도 있고…
- 그만. 무슨 소린지 알겠어. 그런데,
연지의 찌푸린 이맛살에 떠오르던 수많은 말들을, 모두 다 해독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도 연지는 그 모든 말들을 단어로 버무려 눈앞에 던져버리기 이전에 해야 할 말과 안 해도 될 말쯤은 구분할 줄은 아는, 그러니까 나와는 매우 다른 아이였다.
결국 연지가 정제해 낸 말은 이랬다.
- 화왕계를 서른 여섯 편 보여준다고 신문왕이 갑자기 비평가가 되는 건 아냐.
우리는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아무렴 어때, 라는 생각이다.
숙종은 사씨남정기를 읽고 나서 으하하 재밌다, 라며 기분이 좋아져서 장희빈을 불러다가 꽃놀이를 즐겼을 수도 있다. 그게 뭐 어때서? 스탈린은 동물농장을 읽으면서 방바닥을 데굴데굴 굴렀을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지. 밤새 CCTV를 지켜봐야 하는 경비아저씨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1984를 읽고, 난쏘공을 흥미롭게 읽은 경찰 아저씨는 불법파업 진압용 최루탄을 준비하는 세상이다. 아무렴 어때? 모두가 깜빡하고 있지만 어쨌든 바벨탑은 이미 한 번 무너졌고, 다시 세워지지 않았으며, 인간들은 지구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다시금 언어중추에 혼란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서울 한복판에 빵 하고 터졌지만
거짓말. 테러는 무슨. 사람이 코끼리 소리를 내고 고양이가 경운기 소리를 내는 세상이 되더라도 변하는 건 없다. 그러니 내가 신이라면 이렇게 시시한 징벌을 다시 준비하진 않을 것이다. 그 좋은 머리로 준비할 수 있는 재앙이 얼마나 많은데. 예컨대 바벨 이전의 언어를 갑자기 돌려주는 거다. 아무렴 어때? 싶었던 어마어마한 균열들을 모든 인간들이 깨닫는다. 는 거다. 인간이 하는 인간의 이야기, 균열 속에 던져버리고 스스로의 깜냥으로 감당하기를 포기했던 모든 것들을 일거에
되찾기 위해, 나는 연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이대 커피빈에서 다시 만났다. 꼬박 7년만이었다. 나는 자동문 앞에서 연지를 기다리고 있다가, 또각또각 계단을 올라오는 그녀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피식 웃었다. 커피? 알아서 시켜. 연지는 먼저 걸어가 자리를 잡았고, 종업원에게 수화로 이러쿵저러쿵 주문을 한 나는 진동판을 들고 뒤이어 테이블에 앉았다. 연지는 날 보고 고개를 숙여 큭큭댔다.
- 왜 그래?
- 웃겨서.
연지는 진동판이 울릴 때까지 계속 웃기만 했다. 웅웅대는 소리에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자, 연지는 손을 내밀어 날 붙잡았다. 내가 갈게. 그래. 연지는 음료 두 잔을 들고 돌아왔다. 그리고
- 다시 만나서 반가워. 윤연기.
커피를 내밀며 인사했다.
- 나도.
나는 싱긋 웃었다. 그녀는 내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말했다.
- 나, 아직도 의심이 가는 게 있는데.
- 뭔데?
- 우리 정말 말이 통하고 있는 거 맞지?
- 아마도.
- 왜 너랑 나만 되는 거지? 다른 사람들은 전부 안 되는데?
- 글쎄. 아닐 수도 있잖아.
…너라면 그래, 아직도 별 차이를 모르겠고 아무 감흥도 느끼지 못하겠다고,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할 수도 있겠지, 원래 사람들은 말이 통하지 않았던 거고, 이제 와서 그런 걸 거창하게 느꼈다고 해봐야 별로 달라지는 것도 없다고 말야. 하지만 난, 음,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 사랑이란 단어, 그러니까, 입에서 떼어 놓고 종이에 옮겨 놓고 소리를 지워 놓고 음절만 똑똑히, 오로지 글자만 남은 그 단어가 가지는 힘이 있다고, 믿어. 그걸 두고 시금치나 마우스나 귀뚜라미 같은 단어로, 은근하고 뜨겁고 진하게 말한다면… 글쎄, 그건 쫌 아닌 거지?
…믿어. 믿어야지. 완전히 다가설 순 없더라도 아주 가까운 곳까지 바래다 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우리는 그러니까, 계속해서 스치고 있는 거야. 사실 누구나 알고 있지. 어디에서 내려야지 내가 그려왔던 목적지에 갈 수 있는지. 그런데 자꾸 실수를 하는 거지. 틀렸던 부분에서 또 틀리고, 빨랐던 부분에선 또 빠르고, 느렸던 부분에선 또 느리고. 사실 늘 잘 할 필요도 없어. 딱 한번만 잘 하면 그만인데! 그런 식으로 서른여섯 번 쯤 스치고 나니까 누구누구는 그랬다지. 이제 그만 하자고.
연지는 피식 웃더니 손을 내밀었다.
- 보여줘.
- …뭘?
- 서른일곱 번째. 이번엔 안 틀리고 잘 했나 보게.
그럴 줄 알았지. 나는 집에서 다시 인쇄해 온 원고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연지를 만날 때마다 늘 소설을 건네주곤 했다. 나는 죄인처럼 앉아 있고, 그녀는 그 때마다 항상 무언가를 쪽쪽 빨며 내 소설을 읽었다. 대화다운 대화라곤 한 마디도 나누지 않을 때도 제법 됐다.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확인한 그녀는 늘 “재밌네.” 라든지, 혹은 그를 변용한 말을 한 마디쯤 한 뒤, 능숙하고 여유롭게 또 다른 화제로 넘어가 버리곤 했다. 나는 연지를 보내고 난 뒤, 늘 빈털터리가 된 느낌을 강하게 받으며 터덜터덜, 또 다른 한 달을 채울 또 다른 이야기를 생각했다.
우리는 오랜만에 다시 그 때로 돌아왔다. 연지는 내가 건네주는 원고를 세심하게 읽어 내려갔다. 이따금 피식 웃고,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으며,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 모든 표정에서 이전에 읽을 수 없던, 무거운 세월 같은 것이 느껴져서, 나는 한없이 초조해지고 또 작아지는 심정으로 그녀의 앞에서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 사실 이야기 같은 건 필요 없는데. 나는 무슨 얘기를 듣고 싶었던 걸까. 나는 무슨 얘기가 하고 싶어서 그렇게 오랫동안 쓰잘데없는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써 갈겨 왔던 걸까.
이윽고 연지는 원고에서 눈을 떼었다. 그리고 말했다.
- 화성에서는 모기가 개구리를 강간한다지?
잠시 시간이 정지한 것 같았다.
연지는 내가 왜 이상한 표정을 짓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손을 입에 가져다 대며 천천히, 떨면서 이야기했다.
- 저. 연. 지. 야. 지. 금. 뭐. 라. 고. 했. 니?
연지는 잔뜩 당황한 내 얼굴과 입을 번갈아가며 보더니 큭큭대며 웃었다. 그리고 또 한참동안 웃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시선을 줄 만한 크기였다. 땀을 흘려가며, 손뼉을 치며, 배를 잡아가며 웃던 그녀는 한참 만에 들썩이는 몸을 진정하고는 말했다.
- 그러니까 너한텐 이렇게 얘기하는 거랑 같았다는 거지? 그동안 내 말들이?
뭔가에 얻어맞은 심정이었지만 상황을 정리할 사이도 없었다. 연지는 내 원고를 단단하게 말아서 내 이마를 내리치더니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연지와, 바닥에 떨어진 서른일곱 번째 이야기를 번갈아 바라보고만 있었다. 연지는 샌들로 내 원고를 밟고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나에게 손을 내밀며 활짝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 재밌게 읽었어! 다음에도 부탁해!
나는 얼떨떨한 심정으로 손을 마주잡으며 생각했다. 적어도
우리는 아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았던 모양이라고
…말이다.
(2009.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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