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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할땐/영화보고

어벤져스 (Avengers, 2012) - 감상 및 시사회 후기

 

감독 : 조스 웨던

출연 :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크리스 에반스, 크리스 헴스워스, 스칼렛 요한슨, 마크 러팔로 등

 

- 솔까말 이 영화가 제작된다는 소문을 처음 들었을 때, 그걸 곧이 곧대로 믿었던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마블 코믹스 사정에 어두운 사람들은 이렇게나 많은 슈퍼히어로가 한꺼번에 등장하는 만화 시리즈물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혀를 내두르곤 하는데, 그걸 실사 영화화한다고?... 우려와 기대 속에 마블 프로덕션이 설립되고 처음 제작된 <아이언맨>의 쿠키 영상을 통해 그 존재를 명명백백히 세상에 알린 <어벤져스>는, 4년간의 기다림과 함께 <아이언맨2> <퍼스트 어벤져> 그리고 <토르>라는 초호화 예고편을 남기고 기어코 우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영화의 때깔은 둘째치더라도, 이 미친 기획을 기어코 현실화시킬 수 있었던 마블과 디즈니의 관계자들에게 일단 박수를 보냄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손익계산을 따지는 자본가의 마인드를 넘어선 오타쿠의 마인드, 즉 히어로물이란 장르에 대한 충만한 애정과 관심 없이는 도저히 이뤄낼 수 없는 성과이기 때문이다.

 

- 어제 코엑스에서 있었던 글로벌시사회를 통해 남들보다 먼저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난생 처음 시사회 당첨이란 사건을 겪었지만 별로 행운이라 하기도 뭣한 것이, 서울까지 가는 차비가 더 비싸니 뭐 (...) 시사회 현장은 마블코리아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서 소개가 되기도 했지만서두, http://j.mp/IAi5Lt  보기만큼 막 열기찬 공간은; 아니었다. 그나마 능동적으로 신청한 사람들이 이런데 보통 사람들은 어떠랴... 슈퍼히어로물이 인기라곤 하지만 아직 한국에선 어림없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로키 코스프레를 준비하셨다는 분들이 로키LOKI ROKI 로 쓰시면 어쩔... 미국에도 보내준다는데...(...) 

 

- 영화의 의미를 과대평가할 생각은 없다. 괴물같은 문제의식과 연출력, 그리고 연기력을 보여줬던 다크나이트의 성과에 미치지는 못한다. 다만 오락영화의 반열에서는 가히 끝판왕에 서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액션의 양과 질, 그 사이사이를 칼날처럼 파고드는 농담들, 때려부수고 폭파시키는 스펙타클의 짜임새, 그 모두에서 만점에 가깝다. 게다가 사실상 <어벤져스>의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는 각 영웅 캐릭터의 조율 - 그리고 무게중심의 배분 - 이란 과제 역시 훌륭하게 해 낸다. 이 부분이 특히 감탄스러운 이유는, 이 영화의 성취는 감독과 각본가가 각 캐릭터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않고서는 거의 불가능한 경지에 이르러 있기 때문이다. 히어로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는 드라마 부분 뿐만 아니라 액션 부분에서도 (어쩌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데, 예컨대 캡틴 아메리카 같은 캐릭터는 괴력을 발휘하는 아이언맨이나 토르에 비해 운용의 폭이 훨씬 적고, 정신없는 와중에 자칫하면 묻혀버리기 십상이다. 토르나 헐크는 둘다 막무가내 힘캐; 라서 활약하는 과정이 비슷비슷해 보일 수 있다. 정도와 방법이 다르지만 다른 캐릭터들도 마찬가지다.

 

- 헌데, 이 영화는 그런 과오를 저지르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의 특징을 잘 살리면서도 배분에도 굉장히 신경을 쓰는 편이다. 대규모 액션 시퀀스의 중반부 쯤에 롱-샷으로 각 영웅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적과 싸우는 장면을 보여주는 씬이 있는데, 아, 정말 과장 좀 보태서 팬 입장에서는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다. 캡틴은 시민을 구하고 아이언맨은 적을 유인하다가 캡틴의 방패를 이용해서 적을 공격하고 토르는 날아댕기면서 번개를 쏴대고 블랙 위도우는 휙 휙 뛰어올라가서 적 비행체를 빼앗아 조종하고 호크아이는 빌딩 옥상에서 떨어지면서 화살을 세 개씩 쏘고 헐크는 그저 주먹 한방에 싹 다 SMASH!... 요컨대 "누가 뭘 하고 있는지" 완벽하게 파악된다. 물량공세에도 불구하고 시망했던 수두룩한 액션 영화들이 간과했던 그 점! (트랜스포머 보고 있나?)

 

- 아, 좀 흥분을 가라앉히고; 극찬을 늘어놓고는 있지만 영화 초중반부는 적잖이 늘어지는 편이다. 각 영웅들이 쉴드 본부(헬리케리어) 로 모이는 시퀀스라고 볼 수 있겠는데, 워낙 설명할 게 많은 한편 마냥 구구절절히 늘어놓을 수도 없는 만큼 그 중간 쯤에서 감독이 고민했던 흔적이 느껴진다. 결국엔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버렸지만...; 그런데 비슷한 상황이 코믹스에서 펼쳐진다면 아마도 타이인(Tie-in, 큰 줄기의 이벤트 내에서 각각의 인물들이 겪는 에피소드를 별도의 작품으로 발간. 예컨대 '시빌워' 란 이벤트가 있다면 <시빌워 아이언맨> , <시빌워 스파이더맨>같은 시리즈가 따로 발간됨.) 이슈 발행과 같은 기법을 사용했을 게다. 요컨대 이 상황이 애초에 그다지 쉽게 정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거다. 영화는 갈등 상황을 7세 아동용 만화 수준으로 단순화시키고 캐릭터에 최대한 집중함으로서 난국을 해쳐보고자 하지만... 결국 드라마는 유치해지고, 설명은 복잡해지는 함정에 빠지고 만다. 이 함정에서 영화를 구원하는 것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그러니까 토니 스타크, 아이언맨... 그리고 헐크다.

 

- 아이언맨이 이 영화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할 거라곤 예상했지만 이렇게까지나 엄청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는 그저 "임무에 충실한" 캡틴 아메리카와, "신화의 세계에서 날아온" 토르가 절대 취할 수 없는 포지션, 그러니까 관객의 포지션에서 거만하게 팔짱을 끼고 수시로 농담과 비아냥을 날려댄다. 세계가 악당의 손아귀에 떨어져서 위협에 빠져있다곤 하지만, 애초에 그런 일에 깊게 감정이입 할 리 없는 (성인)관객들이 속으로 '아 이거 유치하다...' 라고 생각할 즈음 한마디씩 툭툭 던져서 속을 시원하게 해 주는 것이다. (스포일러) 토르한테는 셰익스피어 말투 쓰는 몸짱양반, 호크아이한테는 레골라스 양반, 로키한테는 사슴양반, 헐크는 전기충격기로 툭툭찌르면서 화나지? 화나지? 변신 안하냐?... 등등. 유치한 거 맞으니까 웃으면 된다고, 이거 그냥 낄낄대고 웃으면서 보면 되는 영화라고, 말해주는 거랄까. 선언하건대 이 영화의 절반은 토니 스타크가 살려낸다. 그야말로 빵빵 터진다;

 

- 그리고 카운터 펀치를 날려주는 것이 우리 모두의 최종병기 헐크님이시다. 이 영화가 헐크를 이용하는 방법을 보면, 왜 이안감독이 명작을 만들고도 짤렸는지 좀 수긍이 간다. 이안감독은 '고뇌하는 헐크' 를 만들어 냈지만, 원래 헐크는 고뇌하면 안되는 캐릭터다. 헐크는 세상 모든 슈퍼히어로를 통틀어 고뇌라는 것과 가장 거리가 먼 분이다. 헐크는 그저 '우어어 부순다' 는 말로 대표되는 분이며, (...) 적이 눈앞에 있다면 그 작자가 신이건 괴물이건 여자건 남자건 노인이건 전투기건 탱크건 간에 그냥 돌진해서 부숴버리는 단순함과 순수한 폭력성에 그 핵심이 있다는 뜻이다. 고로 헐크의 등장은 모든 것을 단순하게 만든다. 지지고 볶고 싸우던 이들도 헐크가 나타나면 일단 어디론가 도망치고 봐야 하니까... 즉 이 영화는 스스로의 복잡성을 타개하기 위해 헐크란 캐릭터를 일종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로 사용하는데, 이게 어느 정도는 성공적이다. 실제로 헐크의 첫 변신 이후 영화는 적잖이 추진력을 얻는 편이며, 후반부 액션씬에서의 충격적인 활약은...  

 

- 아주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외에 다른 캐릭터들의 활약에는 딱히, 높은 점수를 주진 못하겠다. 뭐 캡틴이나 토르는 토니의 웃음거리가 되어준다는 것 만으로도 훌륭한 역할을 하는 편이지만; 이전 작품들에 비해 부쩍 비중이 상승한 호크아이나 블랙 위도우, 그리고 닉 퓨리와 같은 인물들은 상승한 비중에 비해 설득력있는 역할을 해 주지 못한다. 애초에 사전 영화를 통해 이미 소개되고 설명되었던 캐릭터들과 그렇지 않은 캐릭터간의 차이일 수밖에 없었을텐데, 그럼에도 영웅간에 조금은 기계적인 비중의 균형을 부여한다는 게 이 영화의 유일한 패착인 것 같다. 개인적으론 이 세 사람만 묶어서 '쉴드' 란 제목으로 딱 한편만 영화를 더 만들었다면 완벽한 기획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 어쨌건... 나는 미래를 만드는 것은 오타쿠라고 생각한다. 인문학 같은 게 아니라... 현실과 접점을 만들지 않은 채 마냥 활보하는 상상력의 대부분은 쓸모없이 자족적인 에너지로 소모되기 마련이지만, 그 중 아주 일부는 무서울만큼 강한 힘을 발휘하는 '그 무언가' 가 되어 세상에 떨어진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이나 아인슈타인의 원자폭탄같은 것이랄까...) 나는 <어벤져스>를 만든 오타쿠들이야 말로 그런 일을 해 낸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나는 자족적인 담론의 세계가 현실과의 접점을 가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비판받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 편인지라라... 슈퍼히어로물에서 (혹은 거의 모든 장르물에서) '굳이' 사회학적인 담론을 뽑아내려는 시도도 이해하지 못하고, 이 영화가 그런 담론을 뽑아낼 건덕지가 없는 단순 오락영화란 이유만으로 저평가받아야 할 이유도 모르겠다. 이렇게나 정교한 캐릭터극을 만들 수 있는 애정과 관심은 분명 무시무시한 순수함, 순수한 오덕심 없이는 충전될 수가 없는 것이고, 그 순수함은 순수함 자체로 높게 평가받아 마땅하다. 요컨데, 자고로 덕중의 덕은 양덕이다 (...)

 

- 헌데 속편을 만들면 망할 거라고 생각한다. 흠. 그냥 예감이 그렇다. 이렇게나 절묘한 균형감각은 여러번 유지될 수 있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