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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할땐/영화보고

캡틴아메리카: 시빌 워

 

 

- 스포일러 있음.

 

- 달력에 동그라미까지 쳐가며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빌 워. 드디어 개봉했다.

 

- 오락영화로서의 재미는 합격점을 넘어서서 무릎꿇고 숭배라도 해야 될 판. 전체적으로 액션 씬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인데 그 하나하나가 어쩌면 그렇게 빈틈없이 완벽하게 짜여 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영화가 특히 잘 해내고 있는 것은 히어로 개개인의 특성을 영리하게 파악해서 액션씬에 그 개성을 고스란히 입혀놓는 작업인데, 이 분야에서의 성취는 <어벤져스> 1편의 감격을 넘어서기가 어렵다고 생각했거늘... 왠걸. 다뤄야 할 캐릭터가 배로 늘어났는데도 불구하고 (6명->12명) 그 간극을 느끼기 어려울 만큼 조율 솜씨가 훌륭하다. 다만 <어벤져스> 1편이 헐크나 아이언맨의 오버파워 액션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번 작품은 <캡틴아메리카: 윈터 솔져>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캡틴-블랙위도우 등 맨몸 액션의 비중이 좀 더 강한 편이다. 사실 당연한게 이 영화는 어벤져스 시리즈가 아니라 '캡틴아메리카' 3편이라는 거.

 

- 그렇다면 스토리텔링은 어떠했느냐? 개봉 후 평가들을 보니 의외로 원작 코믹스 팬들이 아쉬움을 많이 표현하고 있는 상황. 사실 <시빌 워>라는 타이틀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이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적어도 코믹스 원작에서의 시빌 워는 "정부의 통제" 와 "인간의 자유" 라는 이념 대립에 가까웠고, 이 이념을 지키려는 과정에서 정도 이상으로 흑화(* 아이언맨) 하거나 비극적인 결과를 맞이하는(* 스파이디...) 영웅들이 속출하는 이벤트였다. 이 영화에서는 그 구도를 어느 정도 빌려오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영웅간의 사소한 감정싸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뭐 열두 명 정도가 잠깐 싸움을 벌일 뿐인데 거기에 거창하게 "전쟁" 이란 이름을 붙이는 건 과하다는 생각도 들고... 조금 박하게 점수를 주자면 <배트맨 vs 슈퍼맨>의 이해할 수 없는 싸움과 화해 수준으로 격하될 여지도 충분하다. 특히 부모와 관계된 문제는... 허지웅 말마따나 백만장자들은 부모 컴플렉스가 있나.

 

- 허나 나는 애초에 원작 <시빌 워>를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 편이 아니기도 하고, (* 솔직히 원작 코믹스야말로 무리수가 속출하지 않나. 아이언맨의 흑화는 그렇다 치고 나는 캡틴의 일장연설에 하나도 공감할 수가 없었음.) 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자리잡은 캡틴이나 아이언맨의 캐릭터가 원작의 재현에 어울리는 편도 아니라서 결론적으로는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자경단 영웅의 책임감과 공공 통제에 관한 블라블라 이념대립도 좋긴 한데... 저 기념비적인 작품 <다크나이트> 이후로 그 주제 자체가 너무 낡아빠지기도 했고. 또 겉으로는 거창한 이념을 내세우지만 속으로는 친구를 지키기 위해서,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뭐 이런 사적인 원한때문에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자 공감할 수 있는 면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어서.

 

- 사실 슈퍼히어로 영화에 이런 문제의식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낯선 일이다. 돌이켜 보면 <어벤져스>1편에 쏟아진 호평은 6명이나 되는 영웅들을 훌륭하게 교통정리했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며... 관객을 900만이나 긁어모았다는 아이언맨 3편 같은 경우도 정작 내용을 살펴보면 토니 스타크 개인에 집중하는 이야기였다. 이런 경향을 뒤집은 게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였는데, 이 영화는 분명히 인간의 자유와 공공 통제라는 주제의식을 찌르고 있었더랬다. 그러다보니 윈터솔져를 최고작으로 치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은 편이고, <시빌 워>가 거기 미치지 못하고 히어로간의 감정소모에 그친 것에 아쉬움을 표시하는 게 아닌가 싶다. 에... 분명히 부정할 수 없는 문제제기다.

 

- 하지만 내가 슈퍼히어로 영화 중에 최고로 치는 건 단연코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2> 인데 ( 다크나이트도 아님. ) 이 장르는 기본적으로 캐릭터를 얼마나 매력적으로 구축하고 제시하느냐에 그 존재의의가 달려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시빌 워도 코믹스에서는 벌써 10년이나 지난 이야기인데 그 주제의식을 스크린에 충실히 옮기는 게 그렇게 중요할까? 싶어서. 하지만 그림 속에 멈춰 있는 캐릭터들을 움직이게 하고 목소리를 입히고 표정을 짓게 하는 건 오로지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영화는 이미 그 작업을 환상적으로 해 내고 있다.

 

- 씬 스틸러는 단연코 돌아온 스파이더맨. 이 캐릭터가 괜히 마블의 간판스타가 아니라는 걸 온몸으로 증명한다. 난 솔직히 어벤져스 3편보다 내년 개봉을 앞둔 <스파이더맨: 홈커밍>을 더 기다리게 되었음.

 

- 물론 앤트맨도 빼놓을 수 없는데 난 좀 부담스러웠다 (...)

 

- 블랙팬서는 단순히 씬 스틸러 정도가 아니라 영화의 한 축이다. 슈트 벗었을 때가 더 인상적인 묘한 히어로.

 

- 맨손액션은 강한 반면에 스칼렛 위치나 비전 등의 초능력 계열 캐릭터를 어찌 다뤄야 할지 몰라한다는 느낌이 있어서 그건 좀 아쉬웠다.

 

- 마블 영화 복습은 아무래도 필요하다. 적어도 <아이언맨2>랑 <어벤져스2>, <윈터 솔져>, <앤트맨> 정도는 보는 게 좋을 거 같았음. 특히 어벤져스랑 윈터솔져는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