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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Diary / Journal

실패

지난 몇 달동안 뭘 했냐고 묻는다면, 그저 후회했단 말만 하고 말렵니다.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도, 다 때려치고 돈이나 벌어야겠다는 생각도, 아니면 그냥 방구석에서 게임이나 하고 싶다는 생각도 다 지나가고 이젠 그냥 살기 싫다는 생각 뿐입니다. 아직까지도 "살기 싫다" 는 표현을 "죽고 싶다" 는 표현 대신 쓰고 있는 게 그나마 이 초라한 정신상태에서 한줄기 빛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마는, 사실 저 표현이 요새처럼 무서웠던 건 또 처음이라, 그건 그것대로 무섭기도 합니다. 하얀 종이에 "죽고 싶다" 고 열 번만 쓰면 정말 베란다로 달려나가서 뛰어내려 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야말로 백지장 한 장 차이를 두고 어떻게든 살고 있습니다.

 

종이 한 장 차이라지만 어쨌든 사는 것과 죽는 것 사이에는 너무나 다른 사건들이 있습니다. (아니다. 안 죽어봐서 모르나...) 설도 지나고 대보름도 지나고 부럼도 깨물고 이력서도 쓰고 면접도 보고 또 실패도 하면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도 못쓰고 책도 못 읽고 음악도 못 듣는, 극악한 정신상태지만 또 신기하게 죽지만 않고 있습니다. 왜? 모르겠어요. 사실 이 글이 저의 생물학적 유서가 될 가능성이 약간은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한 이십프로 정도는?

 

그야말로 온 우주가 어깨동무를 하고 "너 같은 건 필요 없다" 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이꼴이 되도록 뭘 했는지 곰곰이 되짚어 보자니 그야말로 다시 태어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절로 이해가 됩디다. 나도 그다지 살고 싶지 않은데 심지어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삶이라니, 이런 건 대체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꾸역꾸역 이어나가고 있는 겁니까? 죽어야지 진짜...

 

알아요. 이런 얘기 별로 새로울 것도 없고 그다지 깜짝 놀랄 생각도 아니란 거. 그런데 군대에 있을 때 별안간 자살했던 사람 기억을 해 보면, 사실 나도 평소에는 그 사람 이야기를 별로 귀담아듣지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뭐 죽어버리는 사람들이 엄청 특별하거나 힘든 생각과 사정이 있어서 죽는 건 아니라는 거죠. 굉장히 사소한 우연의 장난이랄까. 그렇게 여기와 저기 사이에는 정말 작은 차이밖에 없고, 저는 그래서 알고 보면 죽기에 충분한 사정들을 옆에 두고도 열심히 또 밝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늘 감사하곤 합니다. 미안하기도 하고...

 

봄은 오는데, 다시 시작할 일들은 눈에 보이질 않습니다. 많이 힘듭니다. 정말 많이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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