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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Diary / Journal

간만의 기록

1.

어쨌거나 또! 책을 냈고... 이로써 1년 사이 10권 출간에 성공했다! 사실 책을 낸 뒤의 뿌듯함 이제 이런건 잘 모르겠고, 솔직히 이제 와서 1권을 보면 뭐 이딴 재미없는 얘기를 이리 미주알고주알 서 놨나 싶기도 하고; 특히 19세기를 다루고 나니 기원전 3500년 뭐 이딴 시대 얘기는 정말 너무나도 재미없어뵌다. 항상 "아무리 딴 세상 얘기처럼 들려도 역사는 우리 삶과 연결되어 있다" 는 걸 강조하곤 했는데 그게 참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자꾸 든다. 옛날 얘기는 그냥 옛날 얘기이며, 현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기는 엄청 어렵다. 정 현실과 역사를 연결시키고 싶거든 19세기부터 파도 족하지 않으려나.

2.

석가탄신일 연휴에는 모처럼 영화를 이것저것 챙겨봤는데 뒤늦게 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면서 참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더랬다. 이 영화가 희한한 지점은 노골적으로 판타지이면서도 또 묘하게 현실에 발을 딛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두 주인공은 정말 원없이 사랑을 나누지만 자신들이 며칠 뒤에 헤어질 운명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세상 쿨한 부모들 역시 스스로가 괴이하다는 걸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뭐랄까, 도대체 사랑이 이뤄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한단 말인가? 이런 질문을 자꾸만 하게 만들었더랬다. 사실 이 시대의 '성취 지향적인' 이야기꾼과 보통 사람들은 사랑이 이뤄내는 성취에 방점을 둔다. 결혼이라던가, 부모의 방해를 이겨낸다거나, 악당을 물리친다거나(?), 세계 평화를 지킨다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그냥 황홀한 섹스라던가... '나보다 잘난 경쟁자 물리치기' 라던가... 그런데 어쨌건 이것저것 할거 못할 거 다 해버리고 나서도 끝없이 아쉬워하는 두 주인공을 보면 볼수록, 애정에 성취같은 게 있는가? 그렇다면 애정으로 이뤄내는 성취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을 살펴보건데, 애정의 목표란 건 궁극적으로 그 어떠한 '상태Status' 와 '좋은 관계'를 '되도록 오래' 유지하는 것에 가깝다. 하이고야! 그게 뭐 결혼한다고 달성되는 것도 아니고, 새끼손가락 마주걸고 약속한다고 달성되는 것도 아니고, 매일같이 모습을 바꾸는 저 달 대신 별에게 맹세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늘 초심을 지킨다고 달성되는 것도 아니고. 섹슈얼한 매력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하룻밤 잘 보낸다고 달성되는 것도 아니고. 세상 얼마나 아득한 일이란 말이냐... 그래서 두 주인공이 자꾸자꾸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며, 도대체 저들이 아쉬워하지 않게 하려면 어떤 조건이 갖추어져야 할지 생각하며,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인지 정말 끝없이 회의하며, 역시 연애는 시작도 하지 않는 것이 맞다는 해답을 얻게 되었단 뜻. (응?...)

...뭔가 결론이 이상한 것 같지만 어쨌든 그렇다. 나는 진짜로 그 아득함을 견딜 수가 없다...

3.

오늘(25일)은 마침 트럼프가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선언하고 하루만에 '취소하지 않을 수도 있다' 고 선언한 날이다. 그 깃털같은 가벼움과 언어의 무거움에 새삼 감탄하며, 내가 통신기술이 발달한 21세기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감사하게 되었다. 자국의 힘만 믿고 이토록 가벼운 약속을 남발하던 '제국'의 지도자들이 20세기의 초엽에 얼마나 무시무시한 지옥을 만들어냈는지 잘 알기 때문에... 1914년의 세계에 국제전화와 인터넷만 있었어도, 아마 1차대전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미국인들이 트럼프를 그다지 믿지 않으며 지지율이 40퍼센트를 쉽사리 넘지 않는다는 점에도 너무나 감사하고 있다. 이토록 '강한 국가' '위대한 국민'을 강조하며 외국과 마찰을 빚고, 노동자와 보수층의 환심을 사려 심혈을 기울이며, 사회의 소수자를 악으로 몰아 국민의 분노를 돌리고,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며, 때로 과감한 결단을 내려 세계를 놀라게 했던... (그리고 백색테러를 일삼는 지지층을 둔) 독일의 히틀러는 독일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고, 끝없이 질주한 끝에 역시 어마어마한 지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트럼프 옆에 괴벨스가 없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근데 트럼프 자신이 어느 정도 괴벨스 역할까지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한끝만 실수하도 진짜 지옥도를 만들 수 있는 외교적 곡예들이 마치 TV 속 리얼리티 쇼처럼 소비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이 진짜 신기한 하루하루다. 트럼프는 늘 "다음주에 계속!" 을 외치는 MC같다는 생각이 자꾸자꾸 들며... 정말 박근혜를 탄핵했다는 게 이토록 다행스러울 수가 없는 하루하루. 그래서 "어떻게 될지 두고보자."

4.

책을 완간한 저자와 편집자에게 한 2주일 정도 휴식을 선사하는 법이 통과됐음 좋겠다. 이건 뭐 시지푸스의 노동도 아니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5.

절필이라는 표현을 쓴 적은 없지만 사실상 절필에 가까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물론 회사에서의 노동 때문에 평상시의 기운을 다 빼앗겨 버린 탓도 크지만 그보다는 글에 대한 관심이 예전보다 많이 사라졌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한 것 같다. 사실 예전에 열심히 글을 쓸 때에도 나의 관심사는 글보다는 글을 통해 표현되는 내 자신에 있었다고 해야할 것 같고.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길 바랐다고 해야 할 것 같고. 지금 이런 기록을 남기는 것도 그렇고. 그러니까 글 이외에 '자기 표현의 수단'이 생긴다면 아마도 나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런 게 생긴 것인가?

생길 수도 있을 거 같고. 아니 그보다는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게 된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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