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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Diary / Journal

휴가 그리고 고향

어쩌다 또 여름, 이고 짧게나마 휴가도 맞이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청주다.

지난 포스팅을 보니 3월이긴 한데 솔직히 지난 봄~올 초여름에 이르는 세월을 무슨 정신으로 살아왔는지 짧게 요약할 자신이 없다... 큰 일들만 주워담아 보자면 일단 회사를 관두기로 굳게 맘먹었다가 꽤나 쉽게 관두었고, 이른 여름 휴가 삼아 여수에 다녀왔고, 춤에 반쯤 미쳤고, 그리고 술(...)에는 완전히 미쳤고, 그 사이 책은 두 권이 더 나왔고, 공연을 했고, 하나 더 했고, 두 차례 모두 작년 첫 공연과는 달리 오? 이번엔 제법? 싶었고, 그래서 다시는 공연따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가 슬그머니 맘이 약하지고 있고... 허나 이런 흐름과는 별개로 이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는 예전의 삶을 회복하고 싶다는 맘도 매우 강하게 들고 있으며 또 이것과는 별개로 이제는 본업에 좀 충실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마음도 강하게 들고 있다. 어쩔 수 없는 게 내가 팀장이라서... 아니 내가 왜 어쩌다가?

문제가 있다면 이런저런 일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다양한 일이 내 인생에서는 제각기 너무나 다른 골목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즉, 인간적으로 책을 만드는 인생과 춤을 추는 인생은 너무나도 먼 골목에 있다. 제아무리 화해를 시켜보려 해도 진짜 아무런 교집합이 없어서 여기서 저기로 가려면 천상 유턴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모임도 하나가 아니라 두 개를 하고 있으며 이 두 곳의 연령 구성 및 멤버들의 성격조차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난다. 여기에 가끔은 대학교 친구들도 만나고 또 가끔은 청주에 내려와서 가족들도 만난다. 여기에 또 오래된 취미- 영화, 독서, 게임, 피규어, 식물, 신발 등등- 도 따로 챙기고... 지난 초여름에 나는 회사에서 책 두 권을 마감하며, 모임 두 개에서 각각 공연을 준비하는 한 편, 부천 영화제에 들르고 넷플릭스를 챙겨보며 가끔은 플스도 하고 틈틈이 나이키매니아에 들러 신상 소식도 챙겼는데, 거의 하루하루 다른 평행우주에 도착한 여행자가 된 기분이었다. 아, 길지 않은 인생 그래도 고비고비 꽤 다이나믹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상당히 큰 오산이었다. 

농담처럼 늘어놓고 있지만 사실 나는 꽤 심각하다. 이렇게 투잡 내지 쓰리잡 뛰는 사람처럼 인생의 모든 면에서 얼기설기 널뛰기만 하다 보면 언젠가 '나는 누구인가' 라는 고전적인 질문에 부딪히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물론 속편하게 지금 너의 밥벌이를 시켜주는 것이 네가 집중하고 발전시켜야 할 본질이라 생각하며 살 수도 있겠지만, 아니 세상에 그렇게 사는 사람 몇 명이나 된다고? 무엇보다 나는 일을 하면 할수록 언젠가 이 일과 나의 자아를 연동시킬 만큼 '능수능란'해질 자신이 좀처럼 나질 않는다. 그냥 주는 만큼, 버는 만큼 세상 누군가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수는 있겠으나... (*저 능수능란이란 표현 정말 맘에 들지 않는데 여하튼 엄청 잘한다는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자기합리화 같은 것도 포함되는 거라고나) 요컨대 나에게는 '본진' 이 필요하다. 자아의 본진. 물론 인생에 공고한 안정 따위 없고, 이미 본진 자원 바닥난지 오래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본진에서 쌓아 둔 테크트리가 튼튼해야 멀티도 잘 돌아가는 법이며 자고로 본진 털린 경기가 잘 돌아가는 꼴 본 적 없다...

뭐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역시나 다시 글쓰기로 돌아가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능수능란' 해질 가능성과 관계있는 것 같기도 하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래서 노트북도 새로 사고(!!) 이런 글도 쓰면서 손을 좀 풀고 있는데 너무나 오랫동안 안 써 버릇 했더니 생각이 잘 안 나는 게 문제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일도 하고 취미도 챙기면서 본진까지 챙기자니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점인 것 같고. 사실 술만 덜 먹어도 훨씬 괜찮을 것 같긴 하나...

따지고 보면 여기가 청주라서 그나마 옛날로 돌아가기 좋은 걸지도 모르겠다. 휴가에 내려와 있는 고향이란 게 부질없이 자기 뿌리를 찾게 만드는 그런 힘이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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