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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글들/소설

아랫집 남자가 매일 저녁 담배를 피운다.

아랫집 남자가 매일 저녁 같은 시간에 담배를 피운다.

 

벌써 두 달 째다. 저녁 여섯 시에서 일곱 시 사이면 베란다의 열어둔 창문 틈으로 어김없이 담배냄새가 엉금엉금 기어오른다. 휴일이건, 평일이건, 비가오건, 우박이 쏟아지건,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담배를 태워대는 정성이 어찌나 갸륵한지, 나는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을 나서서 동네 사람들을 감탄시켰다는 칸트의 일화를 떠올리기도 했다.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정상적인 사회적 사정과 자유의지를 가진 성인이 두 달 이상 항상 같은 시간에 같은 행위를 반복하리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식후땡이 제아무리 흡연자의 금과옥조라 하더라도 그렇다. 우선, 매일 밤 같은 시간에 꼭 집에서 저녁을 챙겨먹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가끔은 외식도 하잖아? 직장에서 회식이 있을 때도 있고, 멀리서 친구가 찾아올 수도 있고, 마누라가 너무 피곤해서 저녁을 못해줄 때도 있고. 아니면 가끔은 담배가 떨어져서 동네 슈퍼마켓으로 걸어 나갔다가 그냥 길거리에서 해결하게 되는 때도 있을 텐데, 두 달, 정확히 58일간이나 이렇게 흔하고 진부한 사정들을 죄다 물리치고 꿋꿋이 같은 자리에서 담배를 태우고 또 태운 끝에 기어코 나를 짜증나게 만드는 데에는 분명 인간적인 앙심, 혹은 나를 괴롭히겠다는 비뚤어진 의지가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 나의 정당한 의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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