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집 남자가 매일 저녁 같은 시간에 담배를 피운다.
벌써 두 달 째다. 저녁 여섯 시에서 일곱 시 사이면 베란다의 열어둔 창문 틈으로 어김없이 담배냄새가 엉금엉금 기어오른다. 휴일이건, 평일이건, 비가오건, 우박이 쏟아지건,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담배를 태워대는 정성이 어찌나 갸륵한지, 나는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을 나서서 동네 사람들을 감탄시켰다는 칸트의 일화를 떠올리기도 했다.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정상적인 사회적 사정과 자유의지를 가진 성인이 두 달 이상 항상 같은 시간에 같은 행위를 반복하리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식후땡이 제아무리 흡연자의 금과옥조라 하더라도 그렇다. 우선, 매일 밤 같은 시간에 꼭 집에서 저녁을 챙겨먹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가끔은 외식도 하잖아? 직장에서 회식이 있을 때도 있고, 멀리서 친구가 찾아올 수도 있고, 마누라가 너무 피곤해서 저녁을 못해줄 때도 있고. 아니면 가끔은 담배가 떨어져서 동네 슈퍼마켓으로 걸어 나갔다가 그냥 길거리에서 해결하게 되는 때도 있을 텐데, 두 달, 정확히 58일간이나 이렇게 흔하고 진부한 사정들을 죄다 물리치고 꿋꿋이 같은 자리에서 담배를 태우고 또 태운 끝에 기어코 나를 짜증나게 만드는 데에는 분명 인간적인 앙심, 혹은 나를 괴롭히겠다는 비뚤어진 의지가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 나의 정당한 의심인 것이다.
오해가 있을까 싶어 덧붙이자면 나는 이웃 간의 문제에 있어서는 한없이 관대한 사람이다. 나는 아파트 혹은 그에 준하는 집단주택에 들어와 살겠다고 자유의지로 결정한 이상, 그 안에서 양심과 사생활의 자유가 보장되는 시공간을 지나치게 찾아 헤매는 것이 볼썽사납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가로세로 백 미터도 채 안 되는 공간 속에서, 얄팍한 콘크리트 벽 저편에 몸을 숨긴 채로 누군가는 밥을 짓고 누군가는 야동을 보고 누군가 화장실에서 힘을 주고 누군가는 옆집 남자와 바람을 피우게 되어 있다. 제아무리 서로의 시야를 가리고 소리를 죽인다 한들 이 모든 일들이 서로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고 발생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어차피 세상에 비밀은 없다. 혼자 있다고 방심하지 말라. 아무도 안 본다고 생각하지 말라. 겨레의 큰 스승이자 한국은행 일천원권의 모델이신 퇴계 이황 선생께서는 그래서 신독[愼獨]이란 가르침을 강조하신 바 있다. 풀이하자면 홀로 있을 때에도, 삼가라, 는 뜻이 되겠다. 어차피 혼자 있다는 거, 그거 다 착각이니까! 분명 이시대의 사람들은 지나치게 ‘홀로 있음’ 의 모티브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도 사생활을 보호받고 싶거들랑 좁디좁은 서울 복판에 햄스터 새끼들 마냥 낑겨서 살 생각 말고 어디 모하비사막 같은 곳에 지푸라기로 오두막 하나 짓고 혼자 살아보란 말이다. 경희처럼!
아, 나경희. 경희 얘기를 하는 게 좋겠다. 경희는 내 전처다. 경희는 연애할 때부터 늘 자신에게는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하곤 했다. 결혼을 망설이는 경희를 설득하는 동안 나는 그 ‘혼자만의 공간’ 의 구체적인 의미에 대해 철저하게 파악해야 했다. 결혼을 통해 내가 경희에게 그런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곳은 아침이면 눈곱을 떼고 저녁이면 속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달콤한 낮잠을 마친 후에는 잠시 거울을 살피고 입가에 눌어붙은 침 자국을 지울 기회를 주는 공간이기도 했다. 남들 몰래 참아냈던 억울함과 남부끄러운 욕망들을 마음껏 늘어놓고 혼자 즐길 수 있는 공간, 감추고 싶은 과거와 두려운 미래를 비교대조하고 은밀하지만 중대한 선택을 내릴 수 있는 공간. 그곳은 세속적 권력과 자유로운 개인적 양심의 치외법권 지대이자 의식과 무의식이 자유로이 교류하는 만남의 광장과도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와 고백하건데, 경희가 꿈꾸는 그런 공간은 애초부터 남편이란 종류의 사람이 제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혼이란 게 애초에 사생활의 파괴, 좋게 포장하자면 자아의 확장을 전제로 하는 관계맺음 아니던가? 그렇게 자기 편할 때마다 도망가서 눈물 씻고 화장 고치고 마음 추스를 기회를 주는 공간은 속 좋은 비지니스에나 어울리는 배려의 결과물일 뿐이다. 경희에게 정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면, 그게 나여야만 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지 못할 것 같으면 연애는 왜 하고 결혼은 왜 하는데? 이게 내 욕심이라고 생각하는가? 뭐,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경희 역시 나에게 동의를 표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서로를 받아들여 결혼에 이를 수 있었다.
아랫집 남자 이야기를 하다가 생뚱맞은 경희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우리가 담배 때문에 헤어졌기 때문이다. 경희는 내 몸에 배어 있는 담배냄새를 싫어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자기 옆에 모로 누워있는 내 머리카락에서 담배냄새를 맡을 때면, 코끝에서부터 견딜 수 없는 낯설음이 치밀어 올라서 어느 샌가 자기가 안방 침대에 누워있는 게 아니라 서울역 복판에 신문지를 덮고 누워있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자기 옷이며 머리카락에 어느 새 배어버린 담배냄새를 못 견딘 나머지 히스테리를 부리며 집을 나가버린 적도 있다. 살뜰하게도 목욕가방을 들고 어스름이 내리는 밤거리로 나선 경희는 그 날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공용 비누거품과 오백 원짜리 일회용 샴푸로 온 몸의 냄새를 지워버리고, 드럼세탁기용 섬유유연제 냄새가 물씬 풍기는 찜질복으로 갈아입은 뒤 수면실의 어느 구석까지 도망친 후에야, 경희는 간신히 혼자만의 공간을 찾아냈고… 경희를 찾아낸 처남의 표현에 따르자면, ‘심리적 안정’ 을 되찾게 된 것이다. 나는 경희의 예상치 못한 예민함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그보다는 이 과장된 감정표현에 노골적으로 섞여있는 모욕과 무례를 먼저 감지했다. 대체 경희는, 내 아내는, 나를 뭘로 생각한단 말인가?
싸움이 시작됐다. 경희는 나에게 금연을 요구했고 나는 경희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나는 십년 가까운 흡연 이력 동안 단 한 번도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불편해하는 주변인도 없고 건강에 무리를 느끼지도 않았으며 경제적으로 무리가 되지도 않았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경희 역시 결혼 전에는 나에게 단 한 번도 금연을 요구한 적이 없었다. 나는 경희의 변덕이 못마땅했지만 사실 경희 역시 자신의 거부반응이 생경했을 것이다. 어쩌면 담배는 핑계에 불과했다. 내가 경희의 사생활에 침입했으니, 경희는 내 침입에 부응하는 면역체계를 발동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야 어찌됐던 나에게는 금연을 시도해야만 하는 정당한 이유가 필요했다. 나는 이미 경희를 위해 내 사생활의 많은 부분을 포기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그 때 내 생각에 따르면, 그렇게나 자신의 생활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남의 생활도 그에 못지않게 곱게 다뤄줘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 남이란 사람이 사랑으로 인연을 맺어 평생을 함께하기로 맹세한 남편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우리의 대립이 좀 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사례로 나아갔다면 좋았을 것이다. 더구나 금연이라면, 뭐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라던가, 내 건강을 위해서라던가… 뻔하고 진부한 핑계가 수도 없이 있잖은가. 하지만 경희는 내 생각에 별다른 토를 달지 않았다. 경희는 당신의 말이 모두 맞으니 우리는 애초에 결혼을 하는 게 아니었다… 라고 말했다.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시작이 그랬다는 거다. 세상에는 제아무리 후회가 막심하더라도 막상 쉽게는 번복할 수 없는 결정이 있는 법이다. 많은 것이 어긋난 후에도 우리는 은비를 낳았고, 2년을 더 함께했다. 그동안 나는 금연을 두 번 시도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경희는 나의 체취에 익숙해지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이혼을 처음 입에 담던 날, 경희는 이것이 내 탓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우리가 서로 맞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애초에 자신이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 에 어울리지 않는 종자라고 단언했을 뿐. 슬프게도 나는 이것이 처음부터 예고된 결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경희와 나 사이에는 속 좋은 사랑만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있었다.
경희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저 멀리 떠난다고만 했다. 눈치를 보아하니 분할 받은 재산으로 해외여행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캘리포니아와 멕시코, 남미라는 구체적인 지명을 듣게 된 것은 이미 경희가 떠나간 후의 일이다. 누나의 짐을 챙기러 우리의 신혼집에 들른 처남이 경희의 행방을 궁금해 하는 나에게 핸드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파랗다 못해 하얗게 질려버린 하늘 아래 둥글둥글한 모래언덕만 보이는 곳, 누가 찍어줬는지도 알 수 없는 사진 속에는 사막을 걷고 있는 경희의 자그마한 뒷모습이 있었다.
“모하비사막이래요.” 이어서 캘리포니아, 멕시코, 남미를 언급하며 처남은 좀처럼 속을 알 수 없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오래 있지는 않을 거래요. 은비도 있고 하니까 금방 돌아올 거라고… 어쨌건 잘 지내니까 걱정 말라고 했어요. 뭐, 매형한테 전한 말은 아니지만…”
희한하게도 그 날 밤부터 담배가 싫어졌다. 경희는 이미 사라진 후였지만, 아무래도 처남이 남은 짐마저 들고 나간 탓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사막이 싫었다. 보다 정확히는 경희가 그곳에서 찾게 될 평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마련해 줄 수 없었던 시간과 공간의 축복이 한없이 싫었다. 모하비사막에게 담배를 물려주고 싶었다. 사막 가득 고독한 모래연기 대신 칼칼한 담배연기가 피어오르게 만들어서, 바람이 불 때마다 그 적막한 세상 가득히 나의 흔적으로 기억될 체취를 뿌려대고 싶었다. 세상 어디에도 네가 바라는 너 혼자만의 공간 따위는 없다는 걸- 경희에게 똑똑히 가르쳐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사막에게 담배를 가르칠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담배를 끊었다. 따로 맘먹을 필요도 없이 일어난 일이다. 담배 냄새만 맡아도 화가 치밀어 오르고 구역질이 났으니까. 나는 특히, 신혼집을 비우고 은비와 함께 이사한 새 집의 어느 구석에도 담배 냄새가 다다르지 못하게 하는 일에 온 마음을 쏟았다. 아랫집이며 옆집에서 피어오르는 냄새들을 차단하는 것은 물론이고, 담배를 피우는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는 것까지 막았을 정도다.
그렇게 5년이 지났다. 분명히 해 두는데, 지난 5년을 아무리 되짚어 봐도 요 58일 동안의 아랫집 남자처럼 악질적인 어깃장을 놓았던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아랫집 남자가 지속적으로 담배를 태우기 시작한 시점이 경희가 처남을 통해 5년만의 귀국을 통보한 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도대체가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속이 넓은 사람이다. 이 단언에 동의할 수 없다면, 그래, 그냥 소심하다고 해 두자. 하지만 이 정도 일로 남의 집에 쳐들어가서 사생활에 참견할 만큼 오지랖이 넓지 못한 것만은 확실하다. 요컨대 처음부터 일을 키울 생각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계기라면 지난 주말 집을 찾아온 처남이 던진 몇 마디 말이 계기였다. 누나 문제 때문에 오랜만에 집을 찾아온 처남이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코를 킁킁대더니 나에게 물었던 것이다.
“매형, 담배 끊었다고 안했어요?”
뒤통수가 켕겼다.
“당연하지. 벌써 5년째잖아.”
“담배냄새 나는데?”
“아 그거, 아랫집 남자가 밤마다 담배를 피우는데… 요새 좀 더워서 창문을 열어놨더니 냄새가 집에 밴 거 같아. 많이 나나?…”
나는 고개를 돌린 순간 내 눈에 들어왔던 처남의 찌푸린 표정을 잊지 못한다. 불신과, 한심함이 반반씩 섞인 표정.
“뭐야, 못 믿는 거야?”
“아녜요 뭐, 그런데 아랫집에서 올라왔다고 하기엔 좀 너무 진한데.”
“아파트가 오래돼서 그래. 여기 앞집에서 청국장이라도 끓이면 온 단지에 난리 난다.”
처남은 집 안에 들어와서도 한동안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경희가 연락을 해 왔다고, 귀국해서 은비를 찾아올 거라는 소식을 전화로 알릴 때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심각한 표정이었다. 나는 어쩐지 불안한 마음에 안절부절 못하고만 있었다.
“저, 매형. 그럼 은비는 언제 데려오실래요? 아님 제가 여기로 올까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경희가 여기로 온다고 한 거 아니었어?”
“그게… 매형. 내 말 오해하지 말고 잘 들어요. 내가 그동안 눈치를 좀 보니까, 누나가 형이랑 다시 잘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는 거 같더라구. 근데 뭐 사정이 복잡해서 그런지… 여하튼 망설이고 있어요. 원래 매형 보겠다는 말도 안했는데 내가 설득했거든요. 매형 담배도 끊었고, 부지런해졌고, 여하튼 새사람 돼서 잘 살고 있다…”
이건 좀 이상했다.
“그건 뭔 소리야. 내가 그전에는 뭐 인간 말종이라도 됐다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아무튼 누나 생각은 매형이 그래서 그랬다는 거니까-”
“그래서 그랬다는 게 뭔 말이냐고, 그러니까?”
“에이, 진짜! 사람 말 좀 들어요. 뭐 다 지나간 일이지만서두, 암튼 그, 누나가 생각한 매형의 단점이란 게 있고 매형이 생각한 누나의 단점이란 게 있어서, 그, 말하자면 서로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란 게 있어서 헤어지게 된 건 맞는 말이잖아요. 아니면 뭐 누나만 괴팍한 사람이었나? 그게, 매형은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누나 입장에선 그게 그렇지가 않아요. 나야 이런 말도 그런 말도 많이 들었고. 요컨대, 그, 이런 불만, 저런 불만, 그런 걸 다 덮어주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뭐 이런 걸 해 보는 게 결혼생활이란 거 아니겠습니까? 아, 내가 지금 뭔 소릴 하는 거야…”
처남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무래도 이혼남이 총각에게 들어야 할 충고 같지는 않았다. 나는 팔짱을 끼고 짜증 섞인 날숨을 길게 뿜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요점만 말해봐. 뭐가 문제라는 건데?”
“그러니까 나도 두 분이 다시 잘 해봤으면 좋겠는데… 내가 보기엔 누나, 이 집에 들어왔다간 난리 나요. 다시 해보겠다는 생각도 확 달아날걸요? 아니, 내가 두 사람 헤어지게 된 사정을 자세히는 모른다고 쳐요. 아무튼 가장 큰 이유는 담배냄새 싫다는 거 아니었어요? 그런데 아직도 이렇게 골초 티를 풀풀 내고 있으면 어느 사람이-”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항의했다.
“처남, 내가 아니라 아랫집이라니깐?”
“누나한테 그렇게 말해 봐요. 믿어주나. 나도 못 믿겠는데.”
“아니 뭘 못 믿어? 내가 안 핀다는데? 은비한테 물어볼까?”
“애는 왜 끌어들입니까. 에이 뭐, 안 핀다고 칩시다. 아무튼 중요한 건 이 집에서 냄새가 난다는 거라니깐요? 누나가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게임 오버. 변명 금지. 상황 종결이에요. 그러니까 정 억울하고, 혹시라도 누나를 다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뭐 금연을 해 보셨으면 좋겠다, 싶은 게 내 생각이지만, 뭐 매형도 자존심이 있으니까 이건 아니다 싶으시다면…”
나는 이를 악물고 악을 썼다.
“담배 끊었다니까아악!”
윗집 남자가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문을 두들긴다.
용건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은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지는 않다. 벌써 일주일째 같은 시간에 찾아오고 있는데, 현관 카메라를 통해 지켜본 바로는 항상 도끼눈을 뜨고 이를 악 문채로 팔짱을 끼고 있다. 꽁해 보이는 얼굴에 은테 안경을 쓴 그는 주먹다짐보다는 입씨름에 능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분함과 조급함이 팽배한 얼굴 뒤로는 분명코 곱지 않은 단어들이 꽤 많이 울컥거리고 있는 것 같았고, 혹시라도 문을 열고 나섰다가는 터진 둑처럼 수많은 말들을 철철 쏟아낼 것이 분명했다. 그의 불만이 뭔지, 정체가 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여하튼 달갑지 않은 일이다. 나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고 말싸움을 하고 싶은 기분은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의 방문은 일주일째, 그것도 꼭 내가 정해둔 기상시간 한 시간 전에 계속되고 있다. 현관문이 쾅쾅대는 소리에 일주일째 아침잠을 거르는 기분이 어찌나 거지같은지, 한국이란 나라에 대한 인상이 통째로 일그러질 지경이었다. 나는 금전적인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이곳에 체류하는 기간을 줄이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게 되었다.
길게 머물 생각은 아니었다. 미국에는 두 살배기 아이도 있었고, 양육권을 비롯해 아직 정리하지 못한 문제가 많이 남은 아내도 있었다. 게다가 직장, 가족문제 등 정말 처리해야 할 문제까지 모두 고려하자면 벌써 두 달째 계속되고 있는 나의 외유(外遊)는 정말 턱도 없는 사치였다. 사실 나는 애초에 떠나서는 안 되는 타이밍에 먼 길을 떠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사정을, 어쩌면 나보다도 더욱 확실히 파악하고 있는 내 주치의는 나에게 적어도 반년 이상 해외에서 머물 것을 권유했다. 되도록 말도 통하지 않고 연고도 없는 곳에서 모든 사회적 관계를 끊은 채 고요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절실하다는 진단이었다. 나는 이 진단이 내 얄팍한 사회성에 내려진 파산선고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속절없이 고갈되었다. 이방인 신세로 숨어 지낸다고 해서 과연 다시 채워질 수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이제 그 누구에게 흘려 줄 마음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숨어있을 곳을 찾아 지구본을 돌려보고 있을 때 하필 한국이 눈에 들어왔다. 묘한 일이었다. 그저 우연이기도 하고 그게 아니기도 했다. 그러니 그저 ‘의도된 우연’ 이라고 부르는 게 좋겠다. 경희가 우리 만남을 그렇게 설명했듯이.
나경희. 경희 이야기를 하는 게 좋겠다. 경희는 내 전처다. 내가 여기로 도망 온 탓에 이혼절차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으니 법적으론 아직 내 아내이기도 하다. 나는 모하비 사막 트래킹 도중에 경희를 처음 만났다. 경희는 찻길에서도 제법 떨어져 있는 외딴 벌판을 홀로 걷고 있었는데,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삭막하고 아련한 풍경 속에 완전히 녹아들어서, 내 눈에는 선인장이나 마른 풀잎처럼 사막의 일부분인 것처럼 보였다. “사진 좀 찍어줘요.” 나를 만난 그녀는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내밀었고 내 앞에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아주 먼발치까지 달려가서, 여전히 뒷모습만을 보인 채 손을 흔들어 신호를 보냈다. 파랗다 못해 질려버릴 것 같은 하늘 아래, 듬성듬성 마른 풀만 보이는 둥근 모래언덕을 배경으로 서 있는 사진 속 경희의 뒷모습은 흡사 외로움의 화신처럼 보였다. 사진을 확인한 그녀는 자신의 모습이 맘에 드는 듯 나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나는 의아한 나머지 물었다.
“너무 쓸쓸해 보이지 않아요?”
경희는 대답했다.
“그래서 좋아요.”
사막을 떠난 뒤, 우리는 의도된 우연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었다.
연애기간동안 나는 경희의 국적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경희는 영어도 완벽하게 구사했을 뿐더러, 미국 생활에도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희는 가족 이야기도, 모국에 관한 이야기도 좀처럼 입에 담지 않았다. 굳이 캐어묻자 부모님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다. 경희가 고등학생 때 세상을 떠난 그의 아버지는 술을 마신 날이면 늘 몽둥이를 손에 들고 온 가족을 쫓아다녔단다. 아버지가 그리 된 건 경희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탓에 생겨난 일이고. 경희는 동생과 단 둘이 지샜던, 아버지에게 맞고 쫓겨났던, 그런 아버지마저 잃고 울어야 했던 외로운 밤들을 이야기하며 말을 자주 더듬었다. 나는 더 이상 묻지 못했다. 사실 그건, 가족은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으니 캐묻지 말라는 신호에 가까웠다.
혼인신고를 하는 와중에야 그녀가 미국에 건너 온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한국인’ 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적잖이 놀랐지만 경희는 나의 놀라움에도, 자신이 한국인이란 사실에도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경희는 내 손을 잡고 내 눈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아무리 놀라운 일이라도, 아무리 견디기 힘든 일이라도 이해하고 안아주는 게 사랑 아니냐고.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그녀에게 국적 이상의 비밀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설령 그런 게 있다손 치더라도, 그런 게 우리 사이를 막아설 걸림돌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녀에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그녀는 애초에 미국에 정착할 생각을 갖고 한국을 떠나온 것도 아니었다. 나는 늦은 새벽, 종종 전화기를 붙들고 작은 목소리로 누군가와 말싸움을 벌이는 경희의 뒷모습을 침대에 누워 바라보곤 했다. 잠이 덜 깬 눈동자 속에 윗머리를 쓸어넘기고 한숨을 쉬는, 때로 눈물을 보이며 뭔가를 그리워하고 답답해하는 경희가 보였다. 나중에 설명 들은 바에 따르자면, 그 때 경희와 통화했던 사람은 처남이었고 경희는 나 몰래 친자이민을 준비하고 있었다. 은비를 미국으로 데려올 생각이었던 것이다.
아마 처음부터 숨길 생각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경희의 아이를 용납하지 못할 만큼 속이 좁은 사람은 아니었고, 경희도 그쯤은 알고 있었을 테니까. 문제는, 아마도 은비의 이민을 준비하던 도중에 그녀의 마음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울면서 나에게 고백했다. 돌아가고 싶다고. 잊지 못했다고. 누구를?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입에서 ‘은비’ 라는 대답이 명확하게 떨어지지 않는 이상, 나 역시 더는 이해와 양보, 혹은 속 좋은 사랑 같은 핑계로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대답이 궁해질 때면 그녀는 현관을 열고 나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나는 테라스로 나가 유리창을 통해 담배를 피우는 경희의 옆모습을 보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녀의 담배가 싫었다. 애초에 내가 비흡연자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그녀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단순한 흡연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담배필터를 깊게 빨고, 입 밖의 담배 향을 코로 흡입하고, 허공에 흩어지는 연기를 흐릿한 눈으로 응시하며 알 수 없는 감상에 젖었다가, 이윽고 체념하듯 긴 한숨과 함께 연기를 내뿜었다. 그것은 분명한 기승전결을 가지고 있는 일종의 의식이자 다짐인 것처럼 보였다. 경희의 행동도 내 추측을 뒷받침했는데, 경희는 담배를 피우고 난 뒤에는 항상 모종의 정리가 끝난 사람처럼, 말끔한 표정으로 돌아와 진심어린 사과를 건네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희의 고민은 단 한 번도 그 말끔한 사과나 다 피운 담뱃재처럼 말끔히 털어지지가 않았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묵묵히 기다리기만 했다.
전화로만 이야기를 나누던 처남이 한 번 미국에 다녀가면서 문제가 해결되는 듯 했다. 경희는 은비를 데려오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아이를 가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고민과 우리의 문제가 변한 건 아니었다. 그녀는 여전히 새벽에 깨어 처남과 통화를 했고 나에게 자주 짜증을 냈으며 심지어 임신 중에도 담배에 손을 댔다. 나는 우리에게 아주 약간의 인내심과 그보다 더 큰 사랑이 주어지길 기도했다. 서로를 향한 이해와 배려로 복잡한 문제들을 풀어내고 끝내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그녀를 탓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좀 더 현실적인 핑계거리와 사례 대결을 통해 근원적인 문제를 회피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집안에 아기도 있으니 담배는 좀 끊어라, 혹은 전 남편과 아이 사이에 아직 풀지 못한 감정이 있다면 좀 괴롭더라도 완전히 해결하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 라는 식으로 차분히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나는 애초에 그만큼 사교적인 성격이 못됐다. 나는 그 무렵부터 내 주치의가 깊은 우정으로 걱정할 만큼 안에서부터 썩어 들어가고 있었으며 그에 따라 내 사회성과 인내심도 동시에 밑바닥을 드러냈다. 헤어짐을 고하는 자리에서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인연이 아니었다고 말했지만, 그저 개별성의 폭력에서 도망가고 싶어서 근원적인 이유에 기댔을 뿐이란 걸 알고 있다. 너와 나의 문제를 마주하기 싫어서 사랑을 저주하는 철부지 연인들처럼 말이다.
이혼을 준비할 때, 나는 정말 혼자 있고 싶었지만 한편으론 정말 혼자인 게 무서웠는지 모른다. 한국으로 떠난다는 아이디어는 그래서 기막힌 것이었다. 나는 인천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경희의 자취를 느꼈다. 어쩌면 이곳의 모든 사물들에서 경희의 그림자를 찾아 헤맸다. 입국장과 셔틀버스와 지하철과 버스와 가로수, 틈도 없이 늘어선 건물들과 유난히 낮은 하늘, 좁은 골목과 무질서한 간판. 이국적인 풍경이 숨 쉴 새도 없이 스치고 지나가는 곳에서 속절없이 이방인이 되어버린 후에야- 모하비 사막에서 끝없는 하늘을 향해 걷던 경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호텔보다는 작은 아파트에 머무는 편이 조용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들고 온 짐이 없었기 때문에 이사는 조용히 이뤄졌다. 아마 동네의 어느 누구도 외국인이 이 아파트에 이사 왔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내 특징 없는 외모에서 굳이 아시아계 미국인을 연상해 낼 만큼 나에게 집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냉동피자와 즉석식품으로 냉장고를 가득채운 뒤, 나는 두 달간이나 아파트에 처박혀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늦은 아침 일어나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로 떠드는 케이블TV를 보며 멍하니 머리를 비우다가, 낮잠을 자거나 정체 모를 생각에만 잠겨 있어도 시간은 잘만 흘러갔다.
저녁이면 정해진 시간에 베란다에 나가 담배를 피웠다. 한국 시간으로 여섯 시에서 일곱 시 사이. 시차를 계산해 보니 경희가 새벽에 일어나 전화를 받곤 하던, 그 시간이었다. 나는 깨어있는 정신으로 경희의 전화 상대방이 되어, 경희의 마음을 이해해보려고 했다. 이 석양, 이 바람, 이 사소한 소음을 들으며 처남은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대체 얼마나 고달픈 생각들을 퍼부었기에 경희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던 걸까. 아니면… 그게 정말 처남이긴 했을까. 찾아볼 기회도 없었고 방법도 없었던 생각들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내 삶에서 분리되었다. 그리하여 찾아올 이도 없고 찾아갈 이도 없는, 철저한 사생활을 지켜낼 수 있었다. 행복했다. 진심으로 행복했다. 그리고 지금 윗집 남자는 58일간 유지되어 온 내 가녀린 행복을 처절하게 박살내고 있는 중이다. 왜? 무슨 앙심을 품고?
오늘 아침의 방문은 특히나 요란했다. 방문이 부서져라 두들기다가 이윽고 소리를 질러대는데, 나는 한국말을 전혀 모르지만 아무래도 좋은 뜻인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문 뒤에 몸을 숨긴 채 경찰을 부를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었다. 카메라를 노려보던 남자는 다행히 내가 본격적으로 전화를 찾기 전에 사라졌다. 하지만 그 눈빛이 얼마나 매서운 살기로 가득하던지- 나는 진짜 나쁜 일이 생기기 전에 이곳을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다. 짐을 다 꾸리고도 굳이 오후까지 집 안에 머물렀던 건 단지 부동산 업자가 집주인과 연락을 취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석양이 지는 시간이 찾아오고, 나는 냉장고에서 담배를 찾아 베란다로 나갔다. 창문을 열고 담배를 입에 물려고 하는데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부동산에서 걸려온 전화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내 귀에는 천만뜻밖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야. 경희.”
나는 담배를 입에 문채 굳어버렸다.
“한국으로 갔다는 얘기 들었어. 암만 그래도 나한테 얘기도 안하고…”
“아, 그, 미안. 애초에 누구한테 말하고 떠나려는 게 아니었거든.”
“걱정 마. 싸우려고 전화한 거 아니니까. 나, 며칠 있으면 한국 들어가거든. 괜찮으면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내가 찾아갈게.”
경희의 목소리는 낮고 침착했다. 지난 5년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톤이라서, 마치 딴 사람 목소리를 듣는 기분이었다.
“한국엔 무슨 일로?”
“그냥… 은비도 보고 싶고, 가족들도 오랜만에 만나고 싶었는데, 당신까지 있다니까 더더욱 가야할 것 같더라고. 지금 나한테 의미 있는 사람들은 전부 한국에 가 있는 셈이거든. 나 혼자 여기서 뭐 하는 건가 싶어.”
경희의 말끝엔 헛웃음이 묻어있었다. 나는 베란다로 걸어 나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어차피 변호사도 대동하고 해결해야 할 일이 많을 텐데, 미국 가서 보는 게 어때? 나도 오래 있을 생각 아니었어.”
“그런 얘기 하자는 게 아니야. 그냥 다른 얘기, 뭐 사는 얘기나 아이 얘기 같은 거… 한국 이야기도 좋고… 어쨌든 잡담이나 하자는 거야. 친구로 돌아가서. 미국 있는 동안에는 내가 죽 이방인이었는데, 거기서는 당신이 이방인이잖아. 그럼 여기선 하지 못한 얘기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직도 하고 싶은 말이 남았어?”
“가보면 알겠지.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 가 봐서 아니다 싶으면… 안 만나면 되는 거잖아.”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있는 곳 주소 좀 불러줘. 내가 찾아갈게.”
그러고 보니, 누군가에게 이 곳 주소를 이야기하는 게 처음인 것 같았다. 나는 수첩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이미 짐 속에 꾸려 넣은 후였다. 결국 정확하지 않은 기억을 더듬어 찾아오는 길을 장황하게 설명해야 했다.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설명이었지만 어찌됐든 한국 사람인 경희는 대충 알아들은 듯 대답했다. “그냥 아파트 이름이랑 동호수만 말해줘. 알아서 찾아갈 수 있으니까.” 나는 호수를 확인하기 위해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문을 닫고 호수를 확인하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윗집 남자였다.
- 야!
그는 번역도 필요 없는 단발마의 소리를 지르며 내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멱살을 잡고도 한국말로 뭐라 뭐라 소리를 지르던 그는 곧 내가 한국 사람이 아니란 걸 눈치 챈 모양이었다. 당황한 얼굴로 나를 놓아 준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지은 채 한 발짝 바깥에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나대로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나 현관을 기댔다. 북새통에 손에서 놓친 전화기가 윗집 남자와 나 사이에 떨어졌다. 좁은 복도에 정적과 함께 기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때마침 전화기에서 경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윗집 남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 경희…?
잘못 들은 것이겠거니, 싶었다.
누나는 거의 매 주 같은 시간에 전화를 했다.
누군가의 고민 상담원이 된다는 것은 보람찬 일임에 틀림없지만, 그게 5년 이상 계속된다면 설령 부처님이더라도 탈진해 버리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고민을 들어주고 때로 적절하다고 생각한 조언을 하면 할수록, 어째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고 점점 더 꼬여가는 꼴을 지켜보고 있자면 단순한 탈진을 넘어 일종의 공포를 느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나는 누나가 무섭다. 보다 정확하게는, 누나의 전화가 무섭다.
귀국이 고작 며칠 안으로 다가왔지만 누나의 고민은 조금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더 극한으로 치달았다고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기막히게도 아랫집과 윗집에 살게 된 두 매형들은 아직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있지만 누나는 귀국하는 대로 그 사실을 굳이 서로에게 까발리려는 모양이다. “좋은 기회잖아.” 어젯밤 통화중에, 누나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상황을 나쁘게 만드는 게 누나의 목적이라면 이게 좋은 기회일 수도 있지만…
“누나. 밝히려면 차라리 지금 밝혀. 아님 내가 가서 말해줄 수도 있고. 어차피 둘 다 전 남편이잖아. 누나가 사이에 끼었다는 거, 알게 되면 어쩔 건데? 직접 와서 밝히는 게 제일 모양새가 이상하다니까.”
“나한테는 그게 제일 좋아.”
“난 이해를 못하겠어. 누나, 목적이 뭔데?”
“정리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아. 애들도 그렇고, 사람들도 그렇고… 이 기회에 전부 한 자리에 모아놓고 정리해 버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당장은 조금 혼란스럽고 무섭더라도, 그 편이 모두에게 좋을 거야.”
“왜? 뭐 때문에? 누나, 지금도 다들 잘 살고 있어.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없다니까?”
“잘 살고 있다고? 난… 난… 아무래도 아닌 거 같아.”
나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하기야, 맞는 말이다.
누나가 잘못했다.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당당하고도 명백하게 대답할 것이다. 이건 누나 잘못이다. 누나는 5년 사이에 결혼을 두 번이나 하고, 아이를 둘이나 낳았고, 이혼을 두 번이나 했다. 매형 둘은 모두, 순진하고 착한데다가 사랑을 얻는 대가로 자신의 무언가를 희생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언뜻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첫째 매형은 아마도 죽는 날까지 담배연기에 관한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 잠깐의 여행만 성공적으로 끝내면 잘 지낼 것 같은 둘째 매형 역시 파산지경에 이른 마음을 평생 채우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 사람들한테 무슨 죄가 있어서? 다 누나 잘못이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사연을 누나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는 그게 무섭다. 누나는 첫 매형이랑 연애할 때부터 항상 무슨 죄라도 짓는 사람처럼 굴었다.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면 항상 안절부절 못하며, 오늘은 어디를 들렀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다음은 어디를 가기로 했는데, 매형이 어제는 어디를 만졌고 오늘은 어디를 만졌으니 내일은 어디까지 손이 들어올 것 같다며, 제 옷깃을 파고드는 그 뱀 같은 손길이 너무 무섭다고 나에게 고백하곤 하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 때 내 딴에는 위로랍시고 건넸던 말과 손길들이 누나에게는 일종의 고해성사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거룩한 가족의 이름으로 정화되는, 타락의 손길. 타인의 손길. 만일에 매형이 담배라도 피우지 않았다면 아마 결혼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매형의 몸에 늘 배어있는 담배 향은 아버지를 연상시켰다. 누나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체취뿐만 아니라 인상, 행동거지, 맨 정신일 때에도 그다지 친절하지 못한 말투, 걸음걸이까지 매형은 아버지를 많이 닮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매형을 좋아하지 않았다. 매형과 누나가 다정히 만나는 모습을 볼 때면 어린 시절 술에 취해 솥뚜껑만한 손으로 누나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안방으로 끌고 들어가던 아버지가 떠오르곤 했다.
하지만 누나는 아버지를 조금 달리 기억했던 모양이다. 누나가 매형을 좋아한 이유는 애초에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따금씩 제정신으로 집에 돌아올 때, 과자며 인형 같은 것들을 사들고 밝은 표정으로 누나와 놀아주던 아버지를 떠올렸던 것일까. 여하튼 매형은 술은 입에 대지 않았으니까, 그건 다행이었다.
그렇게나 친숙했던 담배 향기가 무려 ‘이혼 사유’ 가 되어버릴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견디고 또 견디던 매형이 결국 폭발했던 그 밤, 누나는 목욕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고 매형은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눈앞에 와 있는 누나를 보면서도 그저 찾아보겠다고만 거짓말을 내뱉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 쉰 누나는 곧 목욕탕으로 들어가 한 시간 동안 씻었다. 기다리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내가 문을 따고 목욕탕으로 들어갔을 때, 누나는 벌거벗은 채 욕조에 앉아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으며 미친 듯이 울고 있었다. 누나는, 이게 뭔지, 내 느낌이 뭔지, 모르겠다고만 했다. 나는 누나를 보낼 수 없었다. 우리는 함께 잠들었다.
그리고 은비가 태어났다.
“아니야.”
내 두려움에 대한 누나의 입장은 확고했다.
“너는 그런 건, 신경 쓸 필요도 없어. 은비는 내 아이야. 그건 확실하잖아? 그래서 데려오겠다는 거야. 내가 여기서 키울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니?”
미국에서 나눈 대화였다. 나는 그 확고함이 무서웠다. 그렇게나 확고한 말투 뒤에 얼마나 가녀린 마음이 숨어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몇 달간의 전화통화를 통해 내가 가지게 된 확신에 따르면, 누나는 그 곳에서 살 수 없었다. 더구나 지금 결혼했다는 남자와 잘 살 수 없는 것은 더더욱 당연해 보였다. 나는 누나를 설득해 보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으로 오는 게 좋을 것 같다. 와서 은비랑 같이 살자. 그리고 나랑 같이 살자…
짧은 만남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와서야 뭔가 잘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누나는 돌아오지 않았다. 은비를 미국으로 데려가겠다고 하지도 않았다. 대신 나는 누나의 임신소식을 전해 들었다. 여전히 너무나도 우울한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느낄 때면 나는 한없이 불행해지고 말았다. 풀어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데, 지금 이대로는 무엇 하나도 제대로 해결해 낼 자신이 없었다. 그 때부터 나는 누나의 전화가 두려워졌다. 수시로 전해 듣던 고민과 곧잘 해주던 조언까지, 전부 다. 그러니까 내 두려움은 사실 너무나도 현실적인 무력감의 결과물이었던 셈이다.
최근 들어 나는 매형과 누나를 어떻게든 다시 연결시켜보려 했지만, 그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예감도 받았다. 담배를 끊었다며 역정을 부리던 매형이 문제는 아니다. 누나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무작정 혼자 있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없어.”
누나가 말했다.
“당장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 어쩌면 평생 숨겨볼 수 있을는지도 몰라. 하지만 더는 못 견디겠어. 가벼워지고 싶어. 그래서 다 터뜨리겠다는 거야… 미안하지만.”
“아니, 아냐.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나는 한숨을 섞어 대답했다.
“한국 오거든 얘기해. 다 모여서 얘기하자. 뭐라도 되겠지.”
“너한테는 너무 큰 짐이 되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
“알았어. 애도 어린데 몸조심해서 잘 데리고 와.”
누나는 미국에서 낳은 아이 사진을 보내줬다. 나는 틈이 날 때마다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들여다보며 얘가 누굴 닮았는지, 앞으로 누굴 닮아갈지, 곰곰이 생각에 빠지곤 했다. 둘째 매형은 일본계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암만 봐도 일본 사람처럼 생긴 것 같지는 않고. 솔직한 심정으로는 한국 사람도 아니고… 그냥 미국 사람처럼 생긴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은비가 무럭무럭 자라날 때에도 비슷한 걱정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사실 그런 게 뭐 중요할까 싶다. 다섯 살이 된 지금 은비는 그냥 매형을 닮았다. 매형은 아버지를 닮았으니까 사실 누나랑 닮기도 했다. 요컨대 돌고 돌아서 서로서로 닮아가는 게 가족인 법이다.
지금 나는 폭탄을 들고 먼 곳에서 날아올 누나를 기다린다. 이 고요한 곳에 시원스레 폭탄이 터지고 나면, 뭔가에 홀린 사람들처럼 매일같이 남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을 반복하던 사람들도 어느 정도는 제정신을 차릴 것이다. 그러고 나면 이런 불만, 저런 사정도 고만고만한 사랑과 이해로 덮어 줄 여유를 찾아볼 수 있겠지.
아님 말고.
(2012. 6. 28)
*글쎄. 무작정 쓰긴 썼는데 써놓고 보니 오랜만에 스탠다드- 사랑과 전쟁 소설.
이거 거울에 올리기도 뭣하네. 그냥 "뭐 어쩌자구!"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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